전쟁 보도와 《해빙》 사이를 건넌 소련 작가
《해빙》이라는 제목은 작품을 넘어 스탈린 이후의 기대와 한계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소설가·시인·저널리스트로, 제2차 세계대전기 전선 기자로 널리 읽혔다. 1954년 소설 《해빙》의 제목은 탈스탈린화기의 시대 명칭이 되었고, 그는 문화적 완화의 경계에서 활동했다.
경력 연표
- 1941–1945적군 기관지 전선 기자
- 1954소설 《해빙》 발표
- 1960–1966회고록 《사람들·세월·삶》 연재
관련 역사 사건
전쟁 선전가: 1,500편의 기사와 '독일인을 죽여라'
에렌부르크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의 종군 기자로 약 1,500편의 기사와 팸플릿을 썼다. 그의 글은 전선 신문에 실렸을 뿐 아니라 낭독회와 전단으로 유포되었으며,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의 기사를 말아 피우는 대신 보관하라는 비공식 명령이 내려질 정도로 널리 읽혔다. 1942년 7월 24일 발표된 기사 '죽여라!(Убей!)'는 '독일인을 죽여라'라는 구호의 결정판이 되었고, 이후 소련 신문에는 '너는 오늘 독일인을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독자 투고란까지 등장했다. 이 선전의 효과는 실로 컸으며, 히틀러는 1945년 1월 직접 그를 '독일의 최대의 적'으로 지목하고 체포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나치 선전은 그를 '스탈린의 집유대인(Hausjude Stalins)'이라 불렀다. 그러나 붉은 군대가 독일 국경을 넘자 소련 지도부의 기조는 '독일 민족 해방'으로 바뀌었고, 1945년 4월 11일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에 실린 그의 기사 '이제 그만!(Хватит!)'에 대해 당 중앙위 선전부장 G.F. 알렉산드로프가 《프라우다》에 '에렌부르크 동지는 단순화한다'라는 반박을 게재하면서 공식적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전쟁 막바지 소련 선전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