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경제협력의 얼굴, 4대 서기장을 보좌한 소련 경제 최고 실무자
1984년 12월 베이징, 15년 만의 최고위 소련 방문에 중국은 그를 '라오펑유'(옛 친구)라 불렀다. 9일간의 방문은 3건의 경제협정과 중소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으로 이어졌다.
14세 선반공에서 소련 각료회의 제1부의장까지 오른 경제 관료로, 1950년 스탈린의 지시로 중국에 파견되어 156개 중공업 프로젝트의 소련 기술 지원을 총괄하며 중소 경제협력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80년부터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체르넨코·고르바초프 4대 서기장을 보좌하며 소련 경제를 실무에서 지휘했고, 1984년 15년 만의 최고위 소련 대표로 베이징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경력 연표
- 1921–1929칼루가 철도 공장 선반공
- 1938–1939크리보이로크 시당위 제1서기
- 1939–1943전연방당 중앙위 간부국 비철금속부장
- 1943–1950비철금속·금속공업 부인민위원·부장관
- 1950–1958중국 주재 수석경제고문
- 1958–1974대외경제관계 국가위 제1부의장
- 1974–1980각료회의 부의장
- 1980–1986각료회의 제1부의장
관련 역사 사건
중소 경제협력과 156개 프로젝트
1950년 2월 스탈린의 지시로 중국에 파견된 아르히포프는 국무원 경제총고문으로서 중소 경제협력의 황금기를 현장에서 이끌었다. 그의 핵심 임무는 156개 중공업 프로젝트, 즉 안산(鞍山) 제철소, 창춘(長春) 제1자동차공장, 뤄양(洛陽) 트랙터공장, 우한(武漢) 장강대교 등 중국 공업화의 근간이 된 대규모 시설들에 대한 소련의 기술 지원·설비 공급·전문가 파견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는 약 5,000명의 소련 고문과 기술자가 활동했으며, 이 프로젝트들은 중국 최초의 근대적 중공업 체계를 구축해 1950년대 연평균 11.3%의 공업 성장을 견인했다.
1958년 철수한 후에도 아르히포프는 소련 측의 '중국통'으로 남아, 1984년 12월 15년 만의 최고위 소련 대표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중국 지도부는 그를 '라오펑유'(옛 친구)라 부르며 환대했고, 야오이린 부총리와 3건의 경제기술협력 협정에 서명해 중소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는 아르히포프를 '신중국에 큰 영향을 미친 60명의 외국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