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화당을 세운 보수파 당간부
고르바초프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폴로스코프를 아주 오래전부터 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내지만, 멍청하고 무식하다. 누군가 써주면 그대로 읊을 뿐이다."
러시아 SFSR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 수준 공산당인 КП РСФСР의 창립 제1서기(1990–1991)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맞서는 당내 보수 반대파의 얼굴이었다. 1990년 5월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과 맞붙어 초기 집계에서 앞섰으나 정치국의 명령으로 후보에서 물러났고, 한 달 뒤 창립대회에서 러시아 공산당을 이끌게 되었다. 크라스노다르 당 조직을 5년간 이끈 지방 당료 출신으로, 정치국 위원까지 올랐으나 당내 개혁파와 강경파 양쪽의 압박 속에 1991년 8월 심장마비로 사임했다. 쿠데타 실패와 당 해산 후에도 КПРФ 자문기구에서 활동하며 러시아 공산당 운동의 상징적 원로로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7–1962 사회운동·조직 · 소련 · 당 서기국 · 조직인사
경력 연표
- 1957–1962콤소몰 · 쿠르스크주 솔른체보 구 당 간부
- 1969–1972쿠르스크주 당 부서 부장
- 1972릴스크 구 집행위원회 의장
- 1973–1978, 1980–1983CPSU 중앙위 기구 근무
- 1983–1984크라스노다르 지방당 이념 담당 서기
- 1984–1985CPSU 중앙위 조직당사업부 과장
- 1985–1990크라스노다르 지방당 제1서기
- 1990–1991КП РСФСР 중앙위 제1서기 · CPSU 정치국 위원
소련 정치국
- 정위원 1990.07–1991.08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1990년 최고회의 의장 경선과 러시아 공화당 창립
1989년부터 당내 반고르바초프 세력은 다른 연방 공화국들처럼 러시아 SFSR에도 공화국 수준의 공산당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 SFSR는 소련에서 유일하게 공화국 단위 공산당이 없던 공화국이었고, 1989년 12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당을 새로 만들 대신 고르바초프를 위원장으로 하는 러시아 SFSR 중앙위원회 사무국을 되살리는 쪽으로 대응했다. 크라스노다르 크라이 당조직을 이끌던 폴로스코프는 1989년 4월 소련 인민대표로 선출되었고 1990년 4월에는 크라스노다르 크라이 인민대표회의 의장을 겸하게 되었다. 1990년 5월 16일부터 6월 22일까지 열린 러시아 SFSR 인민대표 제1차 대회에서 그는 보수·공산 진영의 대표 후보로 최고회의 의장직에 도전해 자유파 후보 보리스 옐친과 맞섰다. 1차 투표에서 옐친 497표 대 폴로스코프 473표, 2차 투표에서 옐친 503표 대 폴로스코프 458표로 두 차례 모두 옐친이 근소하게 앞섰다. 폴로스코프는 훗날 결정적 표결을 앞두고 자신이 120~130표 앞섰으나 정치국에 불려가 분열을 막으라는 명령조로 사퇴를 요구받았다고 회고했다. 공산 진영은 후보를 알렉산드르 블라소프로 교체했고, 옐친이 그를 꺾고 당선되었다. 한 달 뒤인 6월 19일, 2,768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 공산당 창립대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고르바초프와 전연방 당지도부가 지지한 발렌틴 쿱초프는 343표에 그쳐 참패했고, 폴로스코프는 결선에서 올레크 로보프를 1,396표 대 1,066표로 누르고 6월 22일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러시아 SFSR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국 수준의 공산당이 세워졌고, 그 수장에는 강경파로 분류되던 지방 당료 출신 인물이 앉게 되었다. 창립대회는 9월 4~6일 2차 회기에서 중앙위원 272명과 중앙검열위원 96명을 선출하며 마무리되었고, 이때 러시아 공산당은 새로 구성된 러시아 최고회의 의석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는 당의 노선을 페레스트로이카에 반대하는 세력의 구심점으로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도 방식은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러시아 최고회의 의원들은 그가 고르바초프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칼리닌그라드 당원들은 그가 옐친에게 반대한다며 각각 그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