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이오시포비치 프로스쿠로프

Иван Иосифович Проскуров
소련 우크라이나 1907–1941 ✕ 처형

스탈린에게 독일 침공을 경고하고 총살당한 GRU 국장

1940년 4월 소련-핀란드 전쟁 참패 후 열린 군사평의회에서, 프로스쿠로프는 패배의 원인을 정보 실패 탓으로 돌리는 스탈린의 해석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 폭격비행대를 지휘해 소련영웅 칭호를 받은 폭격기 조종사 출신 군사정보 수장. 1939년 4월부터 1940년 7월까지 GRU(소련 군사정보국) 국장 겸 국방부 인민위원 대리를 지냈다. 1940년 6월 프랑스 함락 직후 독일의 소련 침공 준비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스탈린에게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소련-핀란드 전쟁 후 열린 군사평의회에서 정보 실패 탓으로 돌리는 스탈린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1941년 6월 체포되어 재판 없이 10월 28일 총살되었고, 1954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0년 6월 독일 침공 경고

프로스쿠로프가 GRU 국장으로 재임한 1939년 4월부터 1940년 7월까지는 소련 군사정보의 짧은 전성기였다. 그는 대숙청으로 초토화된 정보 조직을 재건하는 데 착수했고, 특히 독일 방면 첩보망 복원에 주력했다. 그의 노력은 곧 성과를 냈다.

1940년 6월 6일,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기 불과 몇 주 전, 프로스쿠로프는 스탈린, 몰로토프, 티모셴코 원수에게 첫 번째 경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가 패망하는 즉시 히틀러가 소련 침공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6월 19일에는 리투아니아 국경에 독일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후속 정보를 올렸다. 5국(GRU)은 1940년 6월 21일에도 독일군 동향에 관한 상세한 정보 요약을 작성해 배포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틀러가 불가침 조약을 지킬 것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프로스쿠로프의 경고는 묵살되었고, 1940년 7월 그는 GRU 국장에서 해임되어 보다 유순한 필리프 골리코프로 교체되었다. 프로스쿠로프가 수집하고 보고한 정보는 1년 후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면서 정확했음이 입증되었지만, 그는 이미 체포되어 쿠이비셰프 근처 바르비시 마을에서 총살된 뒤였다. 그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1941년 6월 22일 소련군의 참혹한 초기 패배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Murphy, David E. (2005). What Stalin Knew: The Enigma of Barbarossa. Yale University Press. / Залесский К.А. Империя Сталина. Биографический энциклопед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Москва, Вече,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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