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첫 비서, 그 기록 보관자이자 첫 전기 작가
바자노프의 회고: 톱스투하는 당대회 투표용지의 필적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누가 스탈린의 이름을 지웠는지 식별했다. 「그가 가진 건 반쪽짜리 폐뿐이었지만, 스탈린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스탈린의 첫 개인비서(1918~1935)이자 중앙위 비밀부장(1926~1930)으로, 스탈린 개인 사무국을 운영하고 레닌연구소 기록보관소를 통제한 인물이다. 1922년 백과사전 「그라나트」에 스탈린의 첫 공식 전기를 집필했으며, 레닌 전집 초판 편찬 작업을 주도했다. 망명 시절 프랑스 사회당에 가입해 노동자로 일했고, 귀국 후 민족인민위원부 서기로 스탈린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기록 관리(특히 레닌과 트로츠키 관련 문서의 선택적 접근)는 스탈린 진영의 이념적 정비에 결정적 도구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 사회운동·조직 · 소련 · 당 서기국 · 조직인사
경력 연표
- 1905–09체르니고프 사회민주주의 조직에서 혁명운동 시작
- 1909–11불온서적 소지로 체포, 시베리아 유형
- 1912–17망명, 오스트리아·프랑스에서 노동; 프랑스 사회당 및 파리 RSDLP(b) 지부 가입
- 1917–18적위대 중앙참모부 감찰부 서기
- 1918–21민족인민위원부 서기·간부, 스탈린과 결합
- 1921–24중앙위 기구 책임일꾼, 스탈린 개인 사무국 조직·운영
- 1922백과사전 「그라나트」에 스탈린 최초 공식 전기 집필
- 1924–26레닌연구소 부소장, 레닌 전집 초판 편찬 참여
- 1926–30중앙위 비밀부장 겸 서기장 제1보좌관
- 1930–31레닌연구소 부소장,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 편집위원
- 1931–35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 부소장 겸 기록보관소장
- 1934–35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 후보위원,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관련 역사 사건
레닌 유산의 편찬자이자 관문지기
톱스투하의 가장 지속적인 업적은 레닌 문헌 전집의 학술적 기초를 닦은 일이다. 1920년대 초부터 레닌연구소에서 생활과 활동을 연구하고 원고의 행방을 하나하나 추적했으며, 전집 초판의 상세 주석을 집필하면서 레닌 원고의 운명과 초판 작업의 역사를 정리했다. 그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레닌의 논문·서한 목록을 직접 작성했고, 1925년 『레닌 선집』 제3권을 교정·주석했으며, 자신이 발의한 연구진이 당내 기본 문헌집인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대회·전국대표자회·중앙위 총회 결의집』을 편찬하는 데 앞장섰다. 이 학술 노동은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학을 사실상 창설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학자이자 편찬자는 동시에 기록의 관문지기였다. 레닌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으면서 그는 레닌이 사망 전 트로츠키와 벌인 격렬한 의견 대립을 담은 모든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스탈린에게 공급함으로써 권력 투쟁에서 일급의 이념적·논쟁적 무기를 쥐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진스키의 조사에서 한 동료는 1929년 스탈린 회갑(50세) 기념 전기 작업을 구실로 톱스투하가 특히 혁명 이전 경력을 포함한 스탈린 관련 문서를 기록보관소에서 모조리 회수해 결코 출판되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스탈린의 생년월일을 실제인 1878년 12월 18일(구력 6일)에서 1879년 12월 21일로 바꾼 것도 그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처럼 정본(正本)을 세우는 편찬의 손길과 정본 바깥의 것을 지우는 통제의 손길은 톱스투하에게서 하나였다. 그가 만든 레닌 문헌의 주석 체계는 이후 소련 역사학의 규범이 되었고, 그가 걸어 잠근 기록보관소는 스탈린 전기의 공식 서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