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오에 보노미

Ivanoe Bonomi

파시즘과 왕정 사이에서 타협을 조직한 개혁 정치가

1943년 6월 그는 국왕에게 무솔리니를 해임하고 바돌리오를 임명하며 독일과의 동맹을 끊으라고 비밀리에 요구했다.

이반오에 보노미는 사회주의 개혁파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자유주의 의회정치의 핵심 인물로 이동한 정치가였다. 파시즘의 부상기에 충분히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했고 무솔리니 정부를 지지한 전력이 있었지만, 1942년부터 반파시스트 세력을 다시 연결하며 정권 교체를 모색했다. 그는 1943년 국왕에게 무솔리니 해임과 피에트로 바돌리오 기용을 비밀리에 요구했고, 9월에는 6개 정당으로 구성된 민족해방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이후 왕정과 저항운동, 연합국 사이의 타협을 이끌며 전후 이탈리아의 제도적 이행을 관리했다.

다른 이름: 이바노에 보노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만토바 협동조합 운동과 1894년 탄압

보노미의 정치 형성은 만토바 지방의 농민 운동과 협동조합 조직에서 출발한다. 1873년 만토바에서 태어난 그는 볼로냐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1896년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법학 학위도 취득했다. 19세기 말 포 계곡 일대는 '라 보예!'로 불린 농민 소요와 마르크스주의 선전, 협동조합 운동이 뒤섞여 있었다. 보노미는 이 흐름 속에서 필리포 투라티, 레오니다 비솔라티, 안나 쿨리쇼파 같은 사회주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며 1893년 이탈리아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가입했다.

1894년 8월 그는 크레모나에서 열린 롬바르디아 지방 사회주의 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프란체스코 크리스피 총리 정부의 탄압 조치에 맞서 반지하 형태로 소집된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보노미는 다른 만토바 사회주의 지도자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75일의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1900년대에 들어 그는 로마 시의원과 하원의원을 지내며 개혁파 노선을 밀고 나갔지만, 리비아 침공에 대한 온건한 지지와 왕과의 접촉 등으로 사회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1912년 당 대회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자 그는 비솔라티 등과 함께 제명되었고, 이들은 이탈리아 개혁사회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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