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러브스톤

Jay Lovestone

1929년 스탈린에게 쫓겨난 미국 공산당 서기장, 훗날 냉전기 반공 노동 외교가

러시아 제국 그로드노 현의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사회당 좌파를 거쳐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창립에 참여했고, 1920년대 루텐버그와 함께 한 분파를 이끌며 당 서기장이 되었다. 부하린과 가까웠던 그는 1929년 코민테른이 지도부 교체를 요구하자 모스크바에서 맞섰다가 제명되었고, 1930년대 우익반대파 「러브스톤파」를 이끌었다. 1940년대부터는 미국노동총연맹과 중앙정보국을 위해 국제 반공 노동 공작을 지휘했다.

다른 이름: 제이컵 리브스타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29년 스탈린과의 대결과 제명

1920년대 미국 공산당은 루텐버그·러브스톤 분파와 포스터·캐넌 분파의 싸움으로 갈라져 있었고,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존 페퍼(포가니 요제프)는 러브스톤의 「막후 실력자」였다. 당 지도자 러브스톤은 1928년 트로츠키 지지자들의 제명을 감독했다. 그러나 그는 부하린과 가까웠다. 스탈린이 1929년 부하린을 정치국에서 몰아내자 그 여파가 러브스톤에게 미쳤다. 미국 당을 찾은 코민테른 대표단은 그에게 서기장 자리를 경쟁자 윌리엄 포스터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러브스톤은 이를 거부하고 당원 절대다수가 자신을 지지한다며 모스크바로 가서 자기 입장을 변호했다.

스탈린은 러브스톤 지도부가 다수를 차지한 것은 당원들이 그들을 코민테른의 확고한 지지자로 여겼기 때문일 뿐이라고 응수했다. 같은 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10차 총회 테제는 미국 당에서 「기회주의적 분파 지도자들(러브스톤, 페퍼)」의 분열적 영향을 청산했다고 환영했다. 러브스톤은 제명되었고, 1930년대에는 부하린을 지지하는 국제 우익반대파의 미국 지부인 「러브스톤파」를 이끌었다.

이 조직은 2차 대전 무렵까지 남았다. 이후 러브스톤은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돌아서서 1944년 미국노동총연맹 자유노조위원회에 들어갔고, 1947년 중앙정보국이 생긴 뒤에는 방첩국장 제임스 앵글턴에게 공산당계 노조 정보를 넘기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반공 노조를 키웠다. 1963~1974년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 국제국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