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샤를 피슈그뤼

Charles Pichegru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프랑스 프랑스 1761–1804 감옥에서 사망, 자살 · 타살 논쟁

프랑스 혁명전쟁의 장군, 반혁명 음모자

1794년 2월 북부군 사령관이 되어 플뢰뤼스 전투에 참여했고, 1794년 12월–1795년 1월 얼어붙은 강을 건너 위트레흐트와 암스테르담에 입성했는데, 이때 프랑스 경기병이 얼음 위에서 네덜란드 함대를 사로잡았다.

1778–1804 프랑스 혁명전쟁기의 장군. 프랑스 혁명전쟁 프랑드르 전선에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라인 전선에서 싸웠다. 이후 왕당파로 돌아섰고, 1797년 프뤽티도르 18일 쿠데타에서 카옌으로 유배되었으며, 런던으로 도피한 뒤 1799년 코르사코프의 참모로 복무했다. 프랑스로 돌아와 나폴레옹에 대한 왕당파 음모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804년 4월 감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다른 이름: 장샤를 피슈그뤼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테르미도르와 1795년의 배신

1795년은 피슈그뤼가 혁명의 장군에서 반혁명 음모자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다. 생쥐스트와 연결되어 있던 인물이었지만, 그는 테르미도르 반동 세력에게 자신의 능력을 바치기로 선택했다. 1795년 4월 1일(제3년 제르미날 12일) 파리의 생퀼로트가 국민공회에 대항해 봉기하자 그를 진압했고, 그 공로로 공회로부터 ‘조국의 구원자’(Sauveur de la Patrie)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어 북부군과 삼브르-뫼즈군, 라인군의 지휘를 다시 맡았고, 라인강을 도하한 뒤 1795년 5월 만하임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 시기 그의 행보는 이미 혁명 정부가 아니라 왕당파를 향해 있었다. 같은 해 그는 동료 장군인 주르당이 패배하도록 방치하고 주르당의 모든 작전 계획을 적국에 넘겼으며, 루이 18세를 복위시키기 위한 음모에 가담했다. 러시아어 전기에는 그가 프랑스 망명자 부대를 이끄는 콩데 공과 비밀리에 연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 반혁명 구상은 콩데 공의 우유부단함과, 전쟁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프랑스의 희생 위에 자기 영토를 넓히려 한 영국·오스트리아의 사리사욕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1795년 10월 그는 총재정부에 사임을 청원했고, 놀랍게도 즉시 수리되었다. 그는 불명예 속에 물러났고 스웨덴 주재 사절 제안은 거절했지만, 1797년 5월 왕당파의 지도자로서 오백인회 의원이 되었고 이후 그 의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