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낙태 퇴치 제국 중앙국을 이끌고 「바르샤바의 도살자」로 불린 게슈타포 간부
1938년 육군 총사령관 프리치를 동성애자로 몰기 위해 증인에게 프리치의 사진을 보여 주며 진술을 끌어냈으나, 재판에서 사람을 착각한 것이 드러나 게슈타포에서 밀려났다.
뮌헨 경찰 출신의 친위대 장교. 1934년 하이드리히를 따라 게슈타포로 옮겨 동성애·낙태 단속을 맡았고, 1936~1938년 동성애·낙태 퇴치 제국 중앙국을 이끌었다. 프리치 수사 실패로 밀려난 뒤 바르샤바에서 대량 학살을 지휘해 「바르샤바의 도살자」로 불렸고, 도쿄 대사관 경찰 연락관을 거쳐 1947년 바르샤바에서 처형되었다.
다른 이름: 요제프 알베르트 마이징거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게슈타포 동성애 단속에서 바르샤바와 도쿄까지
뮌헨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에 자원했고, 1919년 에프 의용군에 들어가 뮌헨 평의회 공화국 진압에 나섰으며 1923년 히틀러 폭동에도 가담했다. 뮌헨 경찰 풍기계를 거쳐 1933년 친위대와 나치당에 들어갔고, 1934년 하이드리히를 따라 베를린 게슈타포로 옮겨 당내 반대파 색출과 동성애자·낙태 단속을 맡았다. 1936~1938년 동성애·낙태 퇴치 제국 중앙국의 초대 책임자로서 박해를 지휘했고, 고문을 뜻하는 「강화된 심문」을 공공연히 승인했다. 1938년 블롬베르크·프리치 위기 때 프리치 수사가 실패하자 자리에서 밀려났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바르샤바 지구 보안경찰·친위대 정보부 사령관으로 팔미리 숲 대량 학살 등을 지휘해 「바르샤바의 도살자」로 불렸다. 1941~1945년 도쿄 독일 대사관의 경찰 연락관으로 재일 독일인을 감시하고 반나치 인사를 일본 헌병대에 넘겼다. 1945년 요코하마에서 미군에 체포되어 폴란드로 넘겨졌고, 1947년 3월 바르샤바 최고 국민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