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아파나시예비치 메레츠코프

Кирилл Афанасьевич Мерецков
소련 러시아 1897–1968 ○ 자연사

NKVD에 고문당하고도 복귀해 레닌그라드 봉쇄를 뚫은 원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 1968년 회고록에서

빈농의 아들로 12세에 모스크바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1917년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겨울전쟁에서 만네르헤임 선을 돌파해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으며, 참모총장 재임 중 독소전 이틀 만에 체포·고문당했으나 스탈린의 지시로 석방되었다. 이후 볼호프 전선과 카렐리야 전선을 지휘하며 1943년 '이스크라 작전'으로 레닌그라드 봉쇄를 깼고, 1945년 만주에서 관동군 격파의 주역이 되었다. 1944년 원수로 진급, 전후에도 현역으로 남아 1968년 사망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체포와 NKVD 고문

독소전이 발발한 이튿날인 1941년 6월 23일, 메레츠코프는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NKVD에 체포되었다. 이미 숙청된 군 지휘관들이 그를 '반소비에트 군사음모'에 가담했다고 진술한 데 근거한 것이었다. 레포르토보 감옥에 수감된 그는 블로지미르스키, 시바르츠만, 로도스, 이바노프 등 악명 높은 수사관들에게 조사를 받았다. 고무 곤봉으로 구타당했고, 보리스 로도스에게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문 끝에 허위 자백서에 서명했다.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체포 전 메레츠코프가 "건장하고 인상적인 젊은 장군"이었으나 석방 후에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야위어 예전의 그림자에 불과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구금 중 NKVD 수사관들이 자신의 머리에 소변을 보았다고 동료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두 달간의 구금 끝에 메레츠코프는 수감 중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 전선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1941년 9월 6일 스탈린의 구두 지시로 전격 석방되었다. 석방 직후 완전한 군복 차림으로 스탈린 앞에 서게 된 그는 곧바로 제7군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그의 수사 파일은 1955년 KGB 의장 세로프의 지시로 폐기되어 사건의 전모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968년 회고록에서 메레츠코프는 이 사건을 단 한 문장으로 처리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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