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 니콜라예바

Клавдия Ивановна Николаева
소련 러시아 1893–1944 ○ 병사

인쇄공 출신으로 당 중앙위원·노조 지도부에 오른 프롤레타리아 여성혁명가

1918년 제1차 전러시아 여성노동자·농민대회, 레닌이 입장하자 니콜라예바는 일어나 《인터내셔널》을 부르기 시작했고 1,147명의 대의원들이 따라 불렀다.

인쇄공 출신 볼셰비키 혁명가. 1917년 《라보트니차》 편집장, 내전기 페트로그라드 여성부를 이끌었다. 당 중앙위원·오르그뷰로 위원까지 오른 소비에트 체제 최고위 여성 간부.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노트델과 볼셰비키 여성운동

니콜라예바는 볼셰비키 여성운동의 제도적 기반을 쌓은 핵심 인물이었다. 페트로그라드 인쇄공 시절부터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선전 활동을 벌였고, 1913년 창간된 볼셰비키 여성 잡지 《라보트니차》(여성 노동자)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1917년 2월 혁명 직후 유배에서 풀려나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온 그녀는 《라보트니차》 편집장을 맡았다. 7월의 탄압 국면에서 볼셰비키 신문들이 폐간될 때도 《라보트니차》만은 발행을 이어갔으며, 이 시기 잡지에는 레닌의 「세 개의 위기」가 실렸다.

1918년 11월, 니콜라예바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차 전러시아 여성노동자·농민대회의 의장을 맡았다. 당초 내전 중 교통 두절로 40여 명만 모였으나, 전보를 받은 대의원들이 속속 도착해 최종 1,147명이 참가했다. 대회는 가사노동의 사회화, 모성 보호, 매춘 근절, 여성 문맹 퇴치를 골자로 하는 여성 조직화 강령을 채택했고, 이를 집행할 당 중앙의 전담 기구로서 제노트델(여성부) 창설로 이어졌다.

내전기 니콜라예바는 페트로그라드 당 위원회의 여성부장 겸 선전부장을 지냈고, 유데니치 백군이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해 오던 1919년 가을에는 제2시구역 혁명재판소에서 복무했다. 1919년부터 1924년까지 《라보트니차》 편집장으로 복귀해 잡지를 여성 노동자·농민 조직화의 중추 매체로 키웠다.

1924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소피아 스미도비치의 뒤를 이어 제노트델 중앙 책임자(당 중앙위원회 여성노동자부장)로 임명되면서 니콜라예바는 소비에트 여성운동의 정점에 섰다. 같은 해 당 중앙위원회 위원, 오르그뷰로 위원, 서기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어, 소비에트 권력사에서 두 번째로 서기국에 진입한 여성이 되었다. 제노트델 책임자로서 그녀는 중앙아시아 무슬림 여성들의 문해 캠페인과 탈베일 운동, 전국적 여성대의원 제도의 정비, 그리고 1920년 합법화된 낙태에 대한 후속 보건 인프라 확충을 밀고 나갔다. 1926년 그녀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강좌에 입학하며 현장을 떠난 뒤에도 제노트델은 1930년 해산될 때까지 그녀가 닦아놓은 지역 여성 조직가 네트워크에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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