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드라트 지그문도비치 테레흐

Кондрат Зигмундович Терех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인 1935–

소비자협동조합 출신의 마지막 소련 무역장관

1987년 설탕 비축량 감소를 정부에 보고하며 소비 위기의 수치를 제시했다.

콘드라트 테레흐는 벨라루스 소비자협동조합의 현장 회계원으로 출발해 페레스트로이카 말기 소련의 마지막 무역장관(1986~91)까지 오른 경제 관료였다. 계획경제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연방의 소비재 유통을 책임진 그는, 배급과 부족이 일상이 된 소비 위기의 최전선에 선 인물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무역장관 시절과 소비 위기의 붕괴 국면

1986년 12월 26일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주도로 소련 무역장관에 임명된 테레흐는 곧바로 상품자원의 극심한 불균형과 맞닥뜨렸다. 소비재 생산량이 창궐한 화폐량에 훨씬 못 미쳤고, 우크라이나 등 일부 공화국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군에 대한 육류·유제품 출하를 중단했다. 수십만 명이 매일 수도 식료품점에 몰려들었고, 그는 벨라루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갈고닦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스크바 유통 개선 종합계획부터 추진했다.

위기는 반알코올 캠페인과 맞물려 더욱 깊어졌다. 당 통제위원회 위원장 미하일 솔로멘체프는 전화로 술 판매가 작년을 1리터라도 넘으면 당증을 거두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귀중한 포도원을 수천 헥타르 베어내고 증류주 공장을 닫자 밀주 제조가 번졌고 설탕 부족이 찾아왔다. 테레흐가 예산 수입 수십억 루블의 손실을 지적하자 솔로멘체프는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리시코프는 그를 감싸며 "네가 먼저 나서서 지켜주겠다"고 다독였다.

상황은 통제 불능으로 치달아 지방에서는 배급표와 식량카드가 도입됐다. 각 공화국과 군, 대공업 중심지의 지원 요청이 몰려들었지만 비축 물량은 한 줌에 불과했다. 일주일치 요청이 무역부의 연간 예비분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1987년 이어진 안구 수술은 체르노빌 사고 여파로 인한 질환이 원인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전환점은 상품자원을 다룬 정치국 비상회의였다. 국가계획위원회 부의장 아나톨리 예피모프는 보고 직후 해임됐고, 10분이 배정된 테레흐는 40분 동안 최근 몇 년의 무역 정책을 낱낱이 분석하며 빈 시장과 휑한 진열대의 원인을 규명했다. 고르바초프는 그를 한마디도 끊지 않았다. 테레흐는 "이 자리를 청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오늘 제 사표를 받아 달라"며 사임을 청원했으나 외면당했다. 결국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그리스에서 휴가 중이던 그는 귀국 후 사실상 무력화된 정부를 발견했고, 같은 해 11월 26일 마지막 소련 정부와 함께 해임됐다.

사임 후 그는 대외경제협회를 설립해 시장경제 러시아에서 기업가로 활동했고, 1998년 채무불이행으로 휴면 저축이 날아가는 타격도 견뎠다. 후일 러시아 벨라루스인 연방민족문화자치회 부의장과 원로회 의장을 맡아 재외 벨라루스인 공동체의 원로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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