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린을 우주로 보낸 군수산업 행정가
가가린은 귀환 다음날 루드네프에게 1961년 4월 13일 자 《프라우다》를 건네며 이렇게 적었다: “지도자에게, 수행자로부터. 가가린.”
소련의 군수·우주산업 행정가. 툴라 출신의 무기 기술자로 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 공장 책임자로 생산을 지휘했고, 전후 로켓 연구소와 군수 관료직을 거쳐 1958년 국가국방기술위원회(GKOT) 의장에 올랐다. GKOT 의장으로서 초기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 개발을 총괄했으며,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주비행을 승인한 국가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이후 각료회의 부의장(1961~1965)으로 과학연구 조정을 담당했고, 계기·자동화·제어시스템 장관(1965~1980)으로 임명되어 민수 산업으로 전환했으나 퇴진으로 읽히기도 했다. 1980년 사망할 때까지 장관직을 유지한 소련 군산복합체의 핵심 인물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5–1941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35–1941툴라 병기공장 설계사, 설계국 부장, 수석기사
- 1941–1947제314공장 수석기사 → 책임자 (메드노고르스크, 철수)
- 1947–1950NI-61 소총·기관포무기 연구소장
- 1950–1952NII-88 로켓연구소장
- 1952–1953소련 무기부 차관
- 1953–1957소련 국방공업부 차관
- 1957–1958국가국방기술위원회 부위원장
- 1958–1961국가국방기술위원회(GKOT) 의장 · 소련 장관
- 1961–1965소련 각료회의 부의장, 국가과학연구조정위원회 의장
- 1965–1980계기·자동화·제어시스템 장관 (민프리보르)
관련 역사 사건
툴라 기계기술자에서 군수 장관까지, 1935~1952
루드네프는 1911년 툴라에서 교사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1935년 툴라 기계기술연구소를 졸업하고 같은 해부터 1941년까지 툴라 병기공장의 설계국(ЦКБ-14)에서 설계사, 과장, 수석기술자로 일했다. 그는 항공기 기관총이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통과해 동조 사격하도록 하는 장치의 개발에 참여했고, 이 공적으로 첫 훈장인 노력무훈메달(1939)을 받았다. 1935~1937년에는 ШКАС 기관총 2연장 체계인 МСШ를 개발한 설계사 집단을 이끌었다. МСШ는 자동화 주기가 두 발로 이루어져 분당 최대 6000발의 발사속도를 냈지만, 7.62mm 구경이 군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개발이 중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툴라 병기공장은 오렌부르크 지역 메드노고르스크로 옮겨져 314호 공장이 되었고, 루드네프는 1941~1943년 이 공장의 수석기술자로서 피난 생산을 지휘한 뒤 1943~1947년에는 공장장을 맡았다. 전후에는 1947~1950년 항공기 사격·기관포 무장 연구소(1948년부터 НИИ-61) 소장, 1950년 무기부 제5총국장 겸 부원, 1950~1952년 НИИ 제88호 연구소(현 코롤료프 시내) 소장을 지냈다. 즉 툴라의 설계사에서 출발해 대전기의 피난 공장 책임자를 거쳐 로켓 연구소장에 이르고, 1952년 무기부 차관으로 중앙 행정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