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이바노비치 아발킨

Леонид Иванович Абалкин
소련 러시아 1930–2011 ○ 자연사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의 수석 경제 이론가, 급진파와 보수파 사이의 '규제된 시장' 설계자

「우리가 금융 전선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승리할 것이다」 — 아발킨이 자주 인용한 레닌의 말

모스크바 출신 정치경제학자. 1986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장이 되어 페레스트로이카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고, 1989년 경제개혁 국가위원장 겸 부총리로 기용되었다. 핵심 구상인 '규제된 시장경제'는 국가 통제 아래 단계적 시장화를 주장했으며, 샤탈린의 500일 계획이 제안한 충격요법과 대비되었다. 1990년 여름 최고회의의 공식 노선으로 채택되었으나 고르바초프의 절충에 실망해 1991년 초 사임했다. 해체 후 『경제의 제문제』 편집장으로 러시아 사회경제 사상을 정립하고 옐친식 급진 자유화에 맞서 중국식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제19차 당대회: 가속화 비판과 독자 노선의 출발

1988년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열린 제19차 전연방 당대회에서 아발킨은 고르바초프의 '가속화(우스코레니예)' 노선을 공개 비판하며 주목받았다. 그는 소련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성장 속도의 증가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투자 우선순위의 전환, 소비재 부문의 확대, 행정 명령 체계의 근본적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발언에서 그는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당·국가 직책의 겸직 제도화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당 서기와 소비에트 의장을 겸하게 하는 구상은 당 기구의 행정화를 심화시켜 오히려 정치 개혁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논리였다. 이 연설로 아발킨은 페레스트로이카 진영 내에서 급진적 충격요법도, 관성적 계획경제 고수도 아닌 제3의 길('규제된 시장경제'로 가는 점진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문적 대변자로 부상했다. 1년 뒤 그가 경제개혁 국가위원장 겸 부총리로 발탁된 것은 이 노선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신임을 반영하는 동시에, 당대회 연단에서 드러난 긴장이 이미 정부 내 노선 갈등의 예고편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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