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산주의를 이론화한 농업마르크스주의자
『영웅적 시기』에서 전시공산주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본질에서 그것은 개인이나 계급의 오류가 아니었다. 비록 순수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것은 미래의 예기요, 미래가 현재로 돌입한 것이었다.”
전시공산주의를 사회주의로의 선취적 돌파로 분석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고스플란 간부로 계획경제 제도화에 참여했고, 차야노프를 비판하며 삼층계급분화론을 주창해 집단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경력 연표
- 1905–1917멘셰비키 청년활동가로 혁명운동 참여, 오데사대학 제적 후 취리히대학 졸업
- 1918귀국 후 RKP(b) 입당, 최고경제회의(Vesenkha)에서 경제정책 실무
- 1920–1921최고경제회의 이용위원회 위원장, 자원 중앙배분 체계 구축
- 1921–1925고스플란 간부회원, 『프라우다』 편집위원, 공산아카데미 간부회원
- 1925–1930농업경제연구소장·공산아카데미 농업연구소장, 『농업전선에서』 책임편집자
- 1926–1936『대소비에트백과사전』 경제 부문 편집위원, 『경제백과사전』 편집장
- 1928–1933중앙통계국 부국장, 소련 고스플란 부의장
- 1933–1938지병으로 공직 사임, 연구에 전념하다 신장병으로 사망. 노보데비치 묘지 안장
관련 역사 사건
『영웅적 시기』와 전시공산주의 이론
크리츠만의 대표작 『위대한 러시아 혁명의 영웅적 시기(소위 '전시공산주의' 분석의 시도)』(1924, 1926년 증보 재판)는 전시공산주의를 단순한 비상조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선취적 돌파로 재해석한 독창적 저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1918~1921년 볼셰비키의 경제정책(전면적 국유화, 화폐 폐지, 잉여식량 징발, 중앙집중적 자원 배분)을 분석하면서, 이 정책들이 외부의 군사적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택된 임시방편이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크리츠만은 전시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자본주의적 시장 관계가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 계획경제로 대체되었다고 보았으며, 이를 미래 공산주의 사회의 핵심 특징들이 시기상조로 출현한 '영웅적 시기'로 평가했다.
크리츠만이 특히 주목한 것은 최고경제회의(VSNKh) 산하 이용위원회(Komissiya Ispolzovaniya)의 역할이었다. 그가 직접 위원장을 지낸 이 기관은 전국적 자원 조사와 중앙 배분을 담당했으며, 크리츠만에게는 시장의 무정부성을 대체하는 계획적 분배 기구의 원형으로 비쳤다. 그는 이용위원회의 경험이 개별 기업의 이윤 동기가 아니라 전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물질적 필요에 기초한 배분 체계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이 저작의 핵심 테제는 '본질에서 그것은 개인이나 계급의 오류가 아니었다. 비록 순수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것은 미래의 예기요, 미래가 현재로 돌입한 것이었다'라는 유명한 문장에 집약된다. 이는 전시공산주의 실패의 책임을 개별 지도자의 판단 오류로 환원하려는 후대의 해석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동시에, 그 경험을 사회주의 건설의 예비적 실천으로 격상시키는 논리였다. 이 책은 1920년대 소비에트 경제학계에서 폭넓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소련 마르크스주의 경제사 서술에서 전시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기본 틀로 자리잡았다. 2024년 영역본 출간과 함께 서구 좌파 학계에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