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922년 제2인터내셔널 서기로 전쟁 중 사무국을 지키고, 뒤에 벨기에 총리가 된 사회주의자
1917년 하위스만스가 이끈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무국은 스톡홀름 평화회의를 추진해 교전국 사회주의자들을 중재하려 했으나, 연합국 정부의 여권 발급 거부로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플랑드르 출신의 교사·언론인으로 1905년부터 1922년까지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서기를 맡았다. 전쟁이 나자 사무국을 중립국 네덜란드로 옮겨 교전국 정당들을 다시 모으려 했고, 1917년 스톡홀름 회의를 준비했다. 전간기 벨기에 하원 의원과 교육장관을 지냈고, 2차 대전 중 런던으로 망명해 다시 인터내셔널 서기를 맡았다. 1946~1947년 벨기에 총리를 지냈다.
1918년, 마르토프는 스탈린이 1907년 당에서 제명된 전력이 있음을 폭로했다. 스탈린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혁명재판소는 마르토프에게 '공적 견책'을 선고했다.
이스크라를 레닌과 함께 만든 동지였으나, 1903년 당원 자격 조항 하나를 두고 갈라져 멘셰비키의 지도자가 되었다. 10월 이후에도 나라를 떠나지 않고 합법 야당의 자리를 지키려 애썼고, 1920년 출국을 「허락받아」 베를린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병상의 레닌이 그의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