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히메네스 데 아수아

Luis Jiménez de Asúa
스페인 공화파 국가기관 사회민주주의자 스페인 스페인 1889–1970 → 망명지에서 사망

1931년 공화국 헌법 기초 위원장을 지낸 사회노동당의 형법학자

1931년 헌법 기초 위원회를 이끌었고, 1928년 『사랑할 자유와 죽을 권리』에서 우생학·안락사·내분비학을 형법의 문제로 다뤘다.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형법학자·정치가. 중앙대학 형법 교수로서 1926년 우나무노 탄압에 항의하다 차파리나스 제도로 유배되었다. 1928년 『사랑할 자유와 죽을 권리』를 냈다. 1931년 사회노동당에 들어가 제헌의회 의원으로 공화국 헌법 기초 위원회를 이끌었고, 1932년 형법과 1933년 「부랑자·불량배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1936년 의회 부의장이 되었고 그해 3월 팔랑헤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1939년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형법학을 가르쳤고, 1962년부터 망명 공화국 대통령을 지내다 1970년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공화국의 형법학자

마드리드 오르탈레사 거리에서 태어나 중앙대학 법학부에서 학사와 박사를 마쳤고, 학술 확장 위원회의 장학금으로 스위스·프랑스·독일을 다니며 오스트리아의 형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를 만났다. 중앙대학 형법 교수가 되었으나, 1926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가 미겔 데 우나무노에게 가한 모욕에 항의하다 차파리나스 제도로 유배되었고, 독재가 대학에 간섭하자 교수직을 내놓았다. 1928년 『사랑할 자유와 죽을 권리: 우생학·안락사·내분비학에 관한 한 형법학자의 시론』을 냈다.

1931년 사회노동당에 들어가 그라나다에서 제헌의회 의원으로 뽑혔고, 공화국 헌법을 만드는 의회 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빅토리아 켄트가 세운 형법 연구소의 소장으로 1932년 형법 작성에 참여했다. 그는 범죄 이전의 「위험 상태」를 오래 연구해 1922년 예방 법전과 처벌 법전을 따로 두자는 「법전 이원론」을 내놓았고, 이를 바탕으로 마리아노 루이스푸네스와 함께 1933년 「부랑자·불량배법」의 새 초안을 썼다. 이 법은 뒤에 프랑코 정권이 동성애자 탄압에 썼다. 사회노동당 온건파에 속한 그는 1936년 2월 총선 뒤 의회 부의장, 6월 당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고, 3월 12일 팔랑헤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으나 경호원 헤수스 히스베르트가 숨졌다.

내전 중 공화국 외교관으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 있었고 국제연맹에서 스페인을 대표했다. 1939년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라플라타·리토랄 대학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형법·범죄학 연구소에서 1966년 군사 쿠데타 때까지 가르쳤고, 일곱 권짜리 『형법 논고』를 남겼다. 1962년부터 1970년 죽을 때까지 망명 공화국 대통령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