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에밀리예비치 만델슈탐

Осип Эмильевич Мандельштам
소련 폴란드 1891–1938 ✕ 옥사

기억으로 살아남은 시인

「러시아에서만 시가 존중받는다—시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시가 살인의 동기인 나라가 또 어디 있나?」 아내 나데즈다의 회고록 『희망, 희망을 거슬러』에 기록된, 스탈린 시대 시인의 운명을 응축한 말.

아크메이즘의 핵심 시인이자 산문가로, 스탈린 체제의 언어와 공포를 시에 새겼다. 체포와 유배 뒤 다시 체포되어 극동 수용소로 보내졌고, 아내와 친구들이 암기해 지킨 시편들보다 먼저 수용소 이송 중 죽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탈린 풍자시와 첫 체포 (1933–1934)

1933년 11월, 만델슈탐은 반스탈린 풍자시 「우리는 나라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Мы живём, под собою не чуя страны»)를 썼다. 크렘린의 산악인(고레츠)이라 불린 스탈린의 굵은 손가락은 살찐 벌레처럼 반짝이고, 그 웃음 뒤에선 처형 명령이 쏟아진다는 내용이었다. 만델슈탐은 열댓 명가량의 지인 앞에서 이 시를 낭독했다. 이를 들은 파스테르나크는 "이것은 문학적 사실이 아니라 자살 행위"라며 관여를 거부했으나, 청중 중 누군가가 밀고했다.

1934년 5월 16일 밤, NKVD가 만델슈탐의 아파트를 급습했다. 야고다가 직접 서명한 체포 영장이었다. 수사관은 압수수색 현장에서 시를 찾아내 만델슈탐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5월 26일 특별회의는 그를 첼딘(페름 지역) 3년 유배형에 처했다. 유배지에서 만델슈탐은 정신적 쇠약 상태로 병원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문단 안팎에 파문을 일으켰다. 부하린은 스탈린에게 "일류 시인이지만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며 탄원했고, 스탈린은 파스테르나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는 거장이지, 거장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 개입으로 만델슈탐의 유배지는 보로네시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 시는 1938년 두 번째 체포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만델슈탐의 아내 나데즈다는 이 시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암기해 보존했고, 그 덕분에 스탈린 사후 시들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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