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이바노비치 라치스

Mārtiņš Lācis
소련 라트비아 1888–1938 ✕ 처형

체카 창립 이사, 계급적 적색 테러의 이론가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 첫 번째 질문은 피의자가 어느 계급 출신이며 어떤 양육과 직업을 가졌느냐다. 그것이 피의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 『크라스니 테로르』, 1918년 11월 1일

라트비아 소작농의 아들로 1905년 라트비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지하 선전 활동을 벌였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으로 10월 봉기에 참여했고, 1918년 5월 체카 간부위원으로 들어가 제르진스키 대리와 반혁명투쟁부장을 맡았다. 1918년 『크라스니 테로르』에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는 논설을 발표해 계급 기반 적색 테러를 이론화했으며, 전우크라이나 체카 의장으로 내전기 보안기구를 지휘했다. 1922년 이후 경제·교육 행정으로 전환했으나 1937년 체포되어 1938년 총살,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계급 기반 적색 테러 이론

1918년 11월 1일, 라치스는 카잔에서 체카 기관지 『크라스니 테로르』(Красный террор) 창간호를 발간하며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는 논설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는 관대했다. 부르주아 개개인에 대한 물증을 찾으려 했지만, 유죄인 것은 개인이 아니라 계급 전체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개인과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고 선언하고, 수사에서 피의자의 계급 출신·양육·교육·직업만이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체카의 '계급적 적색 테러'를 가장 노골적으로 이론화한 글로 즉시 전국적 논란을 불렀다. 레닌은 라치스의 논리를 "터무니없다"고 공개 비판했고, 1918년 12월 25일 『프라우다』에 실린 예멜리얀 야로슬랍스키의 반박문은 마르크스가 이런 수사관 앞에 서면 "부르주아 출신·고등교육·변호사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살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라치스는 훗날 이 표현이 "부주의한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으나, 1921년 저서 『반혁명 투쟁의 비상위원회』에서 체카를 "수사 기관도, 법정도 아닌 공산당의 전투 기관"으로 규정하고 무재판 처형·강제수용소 격리·사회 전 분야 감시를 정당화하며 자신의 구상을 체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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