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 첫 번째 질문은 피의자가 어느 계급 출신이며 어떤 양육과 직업을 가졌느냐다. 그것이 피의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 『크라스니 테로르』, 1918년 11월 1일
라트비아 출신의 소련 혁명가이자 저술가로, 본명은 야니스 수드랍스이다. 1918년 7월부터 11월까지 동부전선 제5군의 체카 및 군사재판소 의장을 지냈고, 1919년부터 1921년까지는 전우크라이나 체카 의장으로서 키예프 체카를 직접 지휘했다. 1918년 11월 1일 카잔의 『크라스니 테로르』에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는 논설을 실어 계급 출신과 양육, 직업만으로 피의자의 운명을 정하자고 주장하며 계급적 적색 테러를 이론화했다. 자료들은 그가 개인적 잔혹함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전하며, 데니킨 위원회의 전우크라이나 체카 관련 자료와 라치스 자신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5라트비아 사회민주당(SDLK) 입당, 비합법 활동
- 1908–1915교사 자격 취득, 교편 생활; 모스크바 샤냡스키 인민대 청강
- 1917.10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10월 봉기
- 1918.5–7체카 간부위원·반혁명투쟁부장; 제르진스키 직무대행
- 1918.7–11동부전선 제5군 체카 및 군사재판소 의장
- 1919–1921전우크라이나 체카(VuChK) 의장
- 1922–1932글라프솔·솔레신디카트·농업인민위원부 등 경제 행정
- 1932–1937모스크바 플레하노프 국민경제연구소 소장
관련 역사 사건
계급 기반 적색 테러 이론
1918년 11월 1일, 라치스는 카잔에서 체카 기관지 『크라스니 테로르』(Красный террор) 창간호를 발간하며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는 논설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는 관대했다. 부르주아 개개인에 대한 물증을 찾으려 했지만, 유죄인 것은 개인이 아니라 계급 전체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개인과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를 섬멸한다"고 선언하고, 수사에서 피의자의 계급 출신·양육·교육·직업만이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체카의 '계급적 적색 테러'를 가장 노골적으로 이론화한 글로 즉시 전국적 논란을 불렀다. 레닌은 라치스의 논리를 "터무니없다"고 공개 비판했고, 1918년 12월 25일 『프라우다』에 실린 예멜리얀 야로슬랍스키의 반박문은 마르크스가 이런 수사관 앞에 서면 "부르주아 출신·고등교육·변호사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살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라치스는 훗날 이 표현이 "부주의한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으나, 1921년 저서 『반혁명 투쟁의 비상위원회』에서 체카를 "수사 기관도, 법정도 아닌 공산당의 전투 기관"으로 규정하고 무재판 처형·강제수용소 격리·사회 전 분야 감시를 정당화하며 자신의 구상을 체계화했다.
체카의 공식 역사가
라치스는 체카에서의 실무 경력과 함께 그 역사를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소련 국가보안기관사의 공식 개념을 세운 초기 역사 서술이 그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체카의 공식 역사가로서 4년간의 체카 활동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체카의 업무에 관한 일련의 팸플릿과 논문을 남겼다.
그의 역사 서술은 1918년부터 1927년까지 발표된 저작들로 이루어졌다. 1920년 모스크바에서 나온 『내부전선에서의 2년간의 투쟁』은 반혁명과 투기, 직무상의 범죄에 맞선 비상위원회의 2년간 활동을 대중적으로 정리한 책이며, 1921년 모스크바에서 나온 『반혁명과의 투쟁에서의 비상위원회』도 이 시기의 저작이다. 여기에 1920년 2월 6일 『이즈베스티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에 실린 「적색 테러에 관한 진실」과 1927년의 「10월의 성과를 지키는 체카」가 더해진다.
이 저작들에서 라치스는 '계급적으로 이질적인' 층에 대한 폭력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체카 활동 해석을 밀어붙였다. 2012년 쿠바소프의 연구는 1918년부터 1927년까지의 그의 저작을 분석해 이런 독특한 해석을 밝혀냈고, 그 해석이 소련 국가보안기관사에 관한 공식 개념의 토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1921년 저서에서 체카를 '당의 전투 기관'으로 규정하며 무재판 처형과 강제수용소 격리를 정당화한 것도 이 역사 서술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역사 서술은 당 안에서도 즉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쿠바소프는 라치스의 역사 서술과 관련된 문헌으로 레닌의 「큰 문제를 밝히기 위한 작은 그림」을 들며, 체카와 적색 테러에 관한 그의 해석을 둘러싼 당내 이견을 보여준다. 플레하노프 연구소에 관한 학술적 서술은 그를 체카 부서의 저명한 인물이자 동시에 그 첫 역사가로 기억했다고 전하면서, 그에 대한 잔혹성 혐의가 어디까지 제기되었는지도 함께 기록한다. 체카의 첫 역사가라는 이 위상은 이후의 논쟁들과 나란히 놓고 볼 때, 그가 남긴 폭력의 교리가 어떻게 기관의 공식 기억으로 굳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