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공세를 지휘한 독일 야전원수
유고슬라비아 항복 직후인 1941년 5월, 그는 다친 독일군 1명마다 세르비아인 100명을 처형하라는 보복 명령을 내렸다.
막시밀리안 폰 바이흐스는 바이에른 군대와 제국군 참모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직업군인으로, 나치 독일의 침략전쟁에서 군단과 야전군을 지휘했다. 1942년 새로 편성된 B집단군 사령관이 되어 제6군과 동맹군을 포함한 남부 공세의 지휘 구조를 맡았고, 스탈린그라드 포위 뒤에는 후퇴를 주장했으나 히틀러의 명령을 바꾸지 못했다. 이후 발칸의 집단군 F와 남동방면군을 지휘하며 점령지 민간인에 대한 보복과 전쟁범죄 책임이 제기되었고, 전후 인질재판에서 건강 악화로 기소 절차가 중단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0바이에른군 제2중기병연대 입대
- 1935제1기갑사단 지휘
- 1937–1939제13군단 및 제13군관구 사령관
- 1939–1942제2군 사령관
- 1942–1943B집단군 사령관, 스탈린그라드 방면 공세
- 1943–1945집단군 F 및 남동방면군 총사령관
- 1947인질재판 절차 중 건강 사유로 석방
관련 역사 사건
기갑부대 건설과 제1기갑사단 지휘(1933~1937)
바이흐스는 재임 중이던 3기병사단을 기갑부대로 전환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독일 기갑병과 건설의 초기 단계에 직접 관여했다. 1935년에는 3기병사단을 모체로 제1기갑사단이 편성되었고, 바이흐스가 그 첫 지휘관이 되었다. 이는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사실상 폐기하고 편성된 독일 최초의 기갑사단 세 개 가운데 하나였다. 부대의 모체가 기병사단이었다는 점은 그 자신이 기병 출신 귀족 장교였던 이력과 맞물려, 기병 엘리트가 근대화되는 독일군 안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제1기갑사단은 기갑여단과 기계화보병여단을 결합한 편성이었고, 편성 초기에는 1호·2호 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했다. 1937년 가을 바이흐스는 제13군단 사령관으로 옮겨가면서 기갑사단 지휘를 마쳤고, 이후에는 1938년 주데텐란트 병합과 1939년 남은 체코 지역 점령 등에 군단 차원에서 참여했다. 이 시기의 기갑부대 건설 경험은 그가 이후 폴란드·프랑스·소련 전선에서 군단과 야전군을 지휘하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