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세볼로드 니콜라예비치 메르쿨로프

Всеволод Николаевич Меркулов
소련 아제르바이잔 1895–1953 ✕ 처형

카틴 명령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린 NKGB 수장, 필명으로 희곡을 쓴 사람

베리야 체포 뒤 흐루쇼프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적었다. “어떻게 남의 저작에 자기 서명을 올릴 수 있는가. 표절도 아니고 그 이상이다.” 문학적 명예에 선을 그은 그 손은 폴란드인 이만여 명의 사형 명단에는 선을 긋지 않았다.

베리야 측근 가운데 가장 교육받은 사람이자 십 년간 그의 실무를 대신한 손이었다. 1921년 그루지야 체카에서 베리야를 만났고, 1938년 12월 NKVD의 이인자가 되었다. 1940년 3월 정치국이 폴란드인 포로 21,857명을 심리도 기소도 없이 처결할 트로이카를 지정했을 때 결정문 첫머리에 적힌 이름이 그였다. 트로이카는 피고를 부르지도, 기소장을 만들지도 않고 명단만 처리했다. 1943년 독일이 카틴 무덤을 발견하자 이를 독일 소행으로 돌릴 부르덴코 위원회의 예비조사를 지휘했다. 집행한 자가 부인까지 조직한 셈이다. 두 차례 국가보안인민위원을 지냈고, 브세볼로드 로크라는 필명으로 희곡을 썼다. 1953년 12월 베리야와 함께 총살됐고 복권되지 않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카틴 학살 — 집행에서 은폐까지

1940년 3월 5일, 베리야는 스탈린에게 폴란드 전쟁포로 14,700명과 서부 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폴란드인 수감자 11,000명을 재판 없이 총살하자고 제안했다. 정치국이 이를 승인하자, 사형 선고를 신속히 처리할 NKVD 트로이카가 구성되었다. 베리야의 제1차관이던 메르쿨로프는 보흐단 코불로프, 레오니트 바슈타코프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어, 피고인 소환도 기소도 없이 명단만으로 22,000명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작전으로 카틴 숲 등지에서 폴란드 장교·지식인들이 대량 학살되었으며, 이는 스탈린 시대 최대 규모의 단일 국가범죄 중 하나로 기록된다.

1943년 봄, 나치 독일이 카틴에서 집단 무덤을 발견하여 소련의 범행을 국제사회에 폭로하자, 메르쿨로프는 은폐 작전을 지휘하게 된다. 그는 '카틴 사건 예비조사 특별위원회'(일명 부르덴코 위원회)를 이끌며 증거를 조작하고 목격자들을 위협해 독일군 탓으로 돌리는 허위 보고서를 1944년 1월 공식 발표했다. 소련은 1990년까지 이 위조된 서사를 고수했다. 카틴 학살의 집행과 은폐 모두 메르쿨로프의 손을 거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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