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모이세예비치 카가노비치

Михаил Моисеевич Каганович
소련 러시아 1888–1941 ✕ 자살

소련 군수공업의 건설자, 형 라자르의 그늘 속에서

1941년 7월 1일, 미코얀 사무실. 고문으로 짜인 거짓 자백과 대면한 후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서 권총 한 발 — 체포되기 전에 스스로 끝냈다.

볼셰비키 금속노동자 출신으로 오르조니키제의 측근 부인민위원을 거쳐 국방공업인민위원(1937–1939)과 항공공업인민위원(1939–1940)을 지내며 대숙청기 소련 군수산업의 조직적 틀을 세웠다. 라자르 카가노비치의 친형으로, 소리치고 가르치는 거친 스타일과 유능한 부하들에 대한 의존으로 유명했으며, 1940년 해임되었다가 독소전 발발 직후 고문으로 짜낸 거짓 자백에 연루되어 미코얀 사무실 화장실에서 권총 자살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NKGB 조작사건과 죽음

1941년 5월 1일, 베리야의 측근인 메르쿨로프 NKGB 인민위원은 스탈린에게 서한을 보내 미하일 카가노비치가 항공공업 내 "반소비에트 사보타주 조직"의 수장이라고 보고했다. 이 혐의의 유일한 근거는 4월 22일 심문을 받은 항공공업인민위원부 책임자 보리스 아키모프의 진술 하나였다. 아키모프는 카가노비치를 직접 만난 적도 없었고, 단지 상사로부터 "우리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메르쿨로프는 아키모프에게서 "1932년부터 독일 정보기관의 요원"이라는 자백까지 받아냈으나 이 또한 신빙성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5월 12일, 카가노비치의 측근 보좌관이자 연설문 작성자였던 레오니트 보댜니츠키가 체포되어 결정적 진술을 했다. 보댜니츠키는 카가노비치가 자신에게 "당의 경제노선은 잘못되었고, 계획은 비현실적이며, 구간부 '때려잡기'가 자행되고 있다"고 토로했으며, "소련에서 유대인의 처지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상부에 보고할 때 "항공공업의 긍정적 측면은 부각하고 실험기 개발·신형기 생산의 지연은 은폐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스탈린이 확신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1941년 7월 1일, 카가노비치는 미코얀의 사무실로 소환되어 베리야와 말렌코프가 지켜보는 앞에서 고문으로 의식이 희미해진 전 부인민위원 보리스 반니코프와 대면했다. 반니코프가 거짓 자백을 반복하자 카가노비치는 "이 개새끼들, 거짓말이야!"라고 고함치며 격렬히 부인했다. 피의자들이 물러난 뒤 대기실로 나가라는 지시를 받은 그는 미코얀의 전용 화장실로 들어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체포 전 자살로 가족을 보호하고 라자르를 비롯한 형제들의 연쇄적 몰락을 막은 것이다.

스탈린 사후 두 달이 지난 1953년 5월 7일, 아이러니하게도 베리야의 제안으로 당 간부회는 카가노비치에 대한 NKGB 자료를 "중상모략"으로 인정하고 완전히 복권시켰다. 미망인 치칠리야 율리예브나에게는 50,000루블의 일시금과 월 200루블의 종신 연금이 지급되었으며, 카가노비치는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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