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1부터 Mi-24까지: 세계 헬리콥터 역사를 다시 쓴 밀 설계국의 창립자
1941년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밀은 특수구조부 기록보관소를 파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년간 쌓아온 연구 자료를 차마 불태울 수 없었던 그는 문서를 연구실에서 몰래 빼내 탈출 행렬에 실었다. 훗날 그 자료들은 소련 헬리콥터 설계의 토대가 되었다.
소련 헬리콥터 산업의 창시자. 이르쿠츠크 유대계 가정 출신으로 ЦАГИ에서 카모프의 조수로 오토자이로를 연구했고, 1947년 독자 설계국을 세워 Mi-1을 탄생시켰다. Mi-4, Mi-6, Mi-8, Mi-10, Mi-12, Mi-24를 연달아 개발하며 60개 세계기록을 수립했고, Mi-8은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쌍발 헬리콥터가 되었다. 단일 로터 방식으로 카모프의 동축 반전 로터와 경쟁하며 소련 헬리콥터의 주류를 장악했고, 시코르스키의 아들로부터 중량물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주의노동영웅, 세 차례 레닌 훈장을 받고 1970년 뇌졸중으로 사망했으며, 사후 Mi-24는 100개국 이상에서 운용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싸운 헬리콥터'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6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26–31톰스크→노보체르카스크에서 항공공학 전공, 카모프 초청으로 첫 오토자이로 실습
- 1931–41ЦАГИ 특수구조부에서 오토자이로 А-7, А-12, А-15 개발
- 1940–41제290호 회전익기 공장 부수석 설계자 (카모프 보좌)
- 1941–43징집, 서부전선 오토자이로 정찰대대 복무; 전투기 안정성 개량
- 1943–47ЦАГИ 제5연구소장, 헬리콥터 연구 주도, 박사학위 (1945)
- 1947–64국가 헬리콥터 설계국 수석설계자 — Mi-1, Mi-4, Mi-6 탄생
- 1964–70밀 설계국 총설계사 — Mi-8, Mi-10, Mi-12, Mi-24, 60개 세계기록
관련 역사 사건
전쟁기의 연구와 설계 활동, 1941~1945
독소전쟁이 시작된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밀은 중우랄의 빌림바이로 피난해 있었다. 이곳은 당시 라보치킨과 카모프 같은 항공 설계자들이 함께 옮겨온 사실상의 소련 항공 산업 거점이었다. 피난 과정에서 밀은 독일군에 넘어가지 않도록 특별설계국(Отдел особых конструкций)의 문서고를 폐기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나, 여러 해 연구의 결실이 담긴 그 기록을 없애지 않았다. 그는 문서를 실험실 밖으로 빼내 함께 옮겼고, 뒤에 이 자료는 헬리콥터 설계에 다시 쓰였다.
밀은 전시 과제에도 직접 관여했다. 1941~1942년 오토자이로 5기로 편성된 부대가 전선에 투입되어 20회의 전투 출동을 기록했는데, 밀도 이 부대에 있었다. 모스크바 근교에서 포병 관측기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기체는 후방 용도에만 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군의 급속한 진격으로 혼란이 빚어졌을 때 그는 무기를 꺼내 위협해 부하들의 동요를 막고 오토자이로를 해체해 후방으로 옮겼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는 탄약을 실은 항공기가 실속에 빠져 회전에 들어가면 조종사가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던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를 만들어 전투 비행장에서 시험을 거쳐 양산에 들어갔고, 몇 달 동안 비행장을 돌며 직접 항공기에 장치를 달고 조종사들에게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1942년에는 S. A. 파스힌과 함께 RS-82 로켓탄을 탱크와 토치카에 발사하는 대전차총을 설계했으나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시험 중 뿜어져 나온 로켓 화염으로 중상을 입을 뻔했다.
전시의 이러한 작업에 대해 밀은 1945년 조국전쟁훈장 2급을 받았다. 한편 그는 1943년 "항공기의 조종성과 기동성 기준"으로 후보 학위를, 1945년에는 "경첩으로 고정된 날개의 로터 동역학과 오토자이로 및 헬리콥터의 안정성·조종성 문제에의 적용"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즉 전쟁기는 그에게 현장 과제 수행과 이론 정립이 겹쳐 있던 시기였고, 이 시기 축적된 자료와 연구가 이후 헬리콥터 설계국을 세우는 밑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