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아르테미예비치 무라비요프

Михаил Артемьевич Муравьёв
소비에트 러시아 러시아 1880–1918 ✕ 봉기 중 사살

짜르 장교에서 붉은 사령관으로: 키예프를 점령하고 브레스트 조약에 반대해 봉기한 좌파 에스에르

키예프 점령 후 레닌에게: "포병대에 고층 건물과 부유한 궁전, 교회와 사제들을 향해 포격하라고 명령했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복무한 농민 출신 장교로, 1917년 좌파 사회혁명당에 합류하여 10월 혁명 당시 페트로그라드 방어를 지휘했다. 1918년 초 키예프를 점령해 우크라이나에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하고 루마니아 전선에서 베사라비아 방어 작전을 이끌며 적군의 주요 군사 지휘관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918년 7월 동부전선 사령관으로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반대해 봉기, '독일과의 전쟁 재개'를 선언했다가 심비르스크에서 사살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8년 7월 봉기: 브레스트 조약 반대와 최후

1918년 6월 13일, 무라비요프는 동부전선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맞서는 전선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전선을 분견대 체제에서 사단·군 체제로 재편하고 미하일 투하쳅스키를 제1군 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조직 정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좌파 에스에르 봉기가 일어나고 볼셰비키 지도부가 자신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무라비요프는 7월 10일 카잔의 전선 사령부를 이탈했다.

그는 충성 부대 약 천 명을 증기선 '메젠' 호에 태우고 심비르스크로 향했다. 심비르스크에 도착하자마자 전신국·우체국·역 등 전략 거점을 장악하고 투하쳅스키를 비롯한 볼셰비키 지도부를 체포했다. 무라비요프는 소비에트 정부와 전 부대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에 선전포고한다'고 타전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는 '볼가 강 서쪽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마리야 스피리도노바, 보리스 캄코프 등 좌파 에스에르 지도자들이 이끄는 '볼가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을 구상했다.

심비르스크 볼셰비키 위원장 이오시프 바레이키스는 재빨리 라트비아 소총병과 체카 특별분견대를 소비에트 건물 주변에 매복시켰다. 7월 11일, 무라비요프가 좌파 에스에르 대표들과 함께 집행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정권 이양을 요구할 때, 매복해 있던 적위대가 그를 체포하려 했다. 무라비요프는 무장 저항을 시도하다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정부 성명은 그가 '스스로 권총을 이마에 쏘았다'고 발표했으나, 목격자 증언은 총격전 중 사망했다고 전한다.

무라비요프의 봉기는 동부전선에 혼란을 초래했다. 그의 모순된 명령(처음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휴전하고 독일과 싸우라는 지시, 이어서는 반대로 체코 군단과 싸우라는 명령)으로 전선 부대는 와해되었고, 블라디미르 카펠의 백군은 이 틈을 타 심비르스크와 카잔을 점령했다. 이 봉기는 붉은 군대 내 구 짜르 장교들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촉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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