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초 노보시비르스크에 밀리치야 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형사 요원들을 대규모 작전의 체포와 호송에 동원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주 NKVD 국장 고르바치와 한 달 내내 충돌한 끝에 그는 전출되었고, 넉 달 뒤에는 그 자신이 체포되었다.
1919년부터 체카에서 일한 고참 요원으로, 1935년부터 이바노보주 밀리치야(경찰) 국장을 지냈고 1938년 2월 카자흐 SSR 내무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겸 밀리치야 총국장이 되었다. 그 직전 노보시비르스크 밀리치야 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밀리치야 인력을 대규모 작전의 체포 업무에 동원하라는 주 NKVD 국장 고르바치의 요구를 거부해 한 달 만에 자리에서 밀려났다. 1938년 6월 알마아타에서 체포되어 여러 나라의 간첩이라는 자백을 강요당했으나 아홉 달 넘게 버텼고, 고문 끝에는 자신이 만주국 황제 푸이의 사생아라는 식의 일부러 터무니없는 진술서를 써서 수사의 조작성을 기록에 남겼다. 194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2년 풀려나 사병으로 참전했으며, 1950년대 중반 복권되었다. 만년에 쓴 회고록 「NKVD 내부에서: 체키스트의 수기」(1995년 사후 출간)는 지휘부급 생존자가 대숙청기 NKVD 내부를 증언한 보기 드문 기록으로, 역사가들이 널리 인용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 보안·정보·치안 · 소련 · 국가보안 기관
경력 연표
- 1919체카(전러시아 비상위원회) 입부, 서부전선 사단 특별부 정찰 요원
- 1922모스크바 주 GPU 비밀정치부 근무, 불라노프의 보좌관
- 1925–1927외무인민위원부 암호부와 소프키노에서 근무
- 1930–1931중앙아시아·레닌그라드 군관구 OGPU 전권대표부 근무
- 1931–1933히비노고르스크 GPU 국장, 이후 타타르 자치공화국 OGPU 근무·카잔 형사수사
- 1935–1938.1이바노보주 밀리치야 수사부서 책임자, 밀리치야 관리국장(내무인민위원부 부국장 겸임)
- 1938.2–6카자흐 SSR 내무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겸 밀리치야 총국장(알마아타); 6월 체포
관련 역사 사건
구금 중의 저항과 회고록
1938년 6월 카자흐 SSR 내무인민위원부에서 체포된 뒤, 시레이데르는 독일·폴란드·일본 간첩 혐의와 키로프 암살 및 반혁명 활동 연루 혐의를 받았다. 그는 모스크바 부티르카와 레포르토보, 야로슬라블, 이바노보의 구금시설을 거쳤다.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심문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고, 1939년 4~5월 모스크바로 이송된 뒤에도 구타와 허위 자백 요구가 이어졌다. 그는 9개월 넘게 거짓 진술을 거부하다가, 사건을 모스크바로 옮기려는 목적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메넬리크 2세의 딸과 관계를 맺었다거나 만주국 황제 푸이의 사생아라는 등 의도적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일부 진술은 수사 기록에 남았다. 1939년 7월 사건 종결 결정이 내려졌지만 8월 수사가 재개되었고, 특별회의는 그에게 노동수용소 10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1940년 말 수용소로 이송된 뒤 1942년 석방되어 전선에 사병으로 배치되었다. 1970년대에 쓴 회고록은 1995년 일부가 출간되었으며, 2018년 역사학자 알렉산드르 테플랴코프는 미출간 부분도 체카·OGPU·NKVD의 인사, 내부 관계와 탄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완본 출간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