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파블로비치 시레이데르

Михаил Павлович Шрейдер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리투아니아 1902–1978 ○ 자연사

대숙청기 NKVD의 내부 증언자

1938년 초 노보시비르스크에 밀리치야 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형사 요원들을 대규모 작전의 체포와 호송에 동원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주 NKVD 국장 고르바치와 한 달 내내 충돌한 끝에 그는 전출되었고, 넉 달 뒤에는 그 자신이 체포되었다.

1919년부터 체카에서 일한 고참 요원으로, 1935년부터 이바노보주 밀리치야(경찰) 국장을 지냈고 1938년 2월 카자흐 SSR 내무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겸 밀리치야 총국장이 되었다. 그 직전 노보시비르스크 밀리치야 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밀리치야 인력을 대규모 작전의 체포 업무에 동원하라는 주 NKVD 국장 고르바치의 요구를 거부해 한 달 만에 자리에서 밀려났다. 1938년 6월 알마아타에서 체포되어 여러 나라의 간첩이라는 자백을 강요당했으나 아홉 달 넘게 버텼고, 고문 끝에는 자신이 만주국 황제 푸이의 사생아라는 식의 일부러 터무니없는 진술서를 써서 수사의 조작성을 기록에 남겼다. 194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2년 풀려나 사병으로 참전했으며, 1950년대 중반 복권되었다. 만년에 쓴 회고록 「NKVD 내부에서: 체키스트의 수기」(1995년 사후 출간)는 지휘부급 생존자가 대숙청기 NKVD 내부를 증언한 보기 드문 기록으로, 역사가들이 널리 인용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구금 중의 저항과 회고록

1938년 6월 카자흐 SSR 내무인민위원부에서 체포된 뒤, 시레이데르는 독일·폴란드·일본 간첩 혐의와 키로프 암살 및 반혁명 활동 연루 혐의를 받았다. 그는 모스크바 부티르카와 레포르토보, 야로슬라블, 이바노보의 구금시설을 거쳤다.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심문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고, 1939년 4~5월 모스크바로 이송된 뒤에도 구타와 허위 자백 요구가 이어졌다. 그는 9개월 넘게 거짓 진술을 거부하다가, 사건을 모스크바로 옮기려는 목적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메넬리크 2세의 딸과 관계를 맺었다거나 만주국 황제 푸이의 사생아라는 등 의도적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일부 진술은 수사 기록에 남았다. 1939년 7월 사건 종결 결정이 내려졌지만 8월 수사가 재개되었고, 특별회의는 그에게 노동수용소 10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1940년 말 수용소로 이송된 뒤 1942년 석방되어 전선에 사병으로 배치되었다. 1970년대에 쓴 회고록은 1995년 일부가 출간되었으며, 2018년 역사학자 알렉산드르 테플랴코프는 미출간 부분도 체카·OGPU·NKVD의 인사, 내부 관계와 탄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완본 출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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