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라파일로비치 밀시테인

Соломон Рафаилович Мильштейн
소련 리투아니아 1899–1955 ✕ 처형

강제이주의 열차를 조직한 수송총국장

1941년 10월, 밀시테인은 베리야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전쟁 발발 이후 특별부가 지연·탈주 군인 65만 7천여 명을 억류했고 그중 1만 201명을 총살했으며 "3,321명은 부대 앞에서 총살"되었다고 적었다.

베리야의 측근으로 그루지야에서 당 경력을 쌓은 뒤, 1939년 NKVD 수송총국장에 올라 스탈린 시대 강제이주의 철도 기구를 운영했다. 그의 총국은 폴란드인, 카라차이인, 칼미크인, 체첸인, 잉구시인 등 전체 민족 집단의 추방 열차를 편성하고 움직였다. 이 공로로 전투공로훈장인 수보로프 훈장 2급을 받았으나 소비에트 국가는 1962년 이를 취소했다. 1953년 베리야의 체포 직후 함께 체포되어 별도 재판으로 1955년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유고슬라비아 쿠데타와 소련 정보작전

1941년 3월 27일 베오그라드에서 친독 정부를 전복시킨 군사 쿠데타는 유고슬라비아 공군 장교들이 주도했으나, 소련 정보기관도 개입했다. 파벨 수도플라토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소련 측은 베오그라드에 정보장교들을 파견해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으며, 이 임무에 솔로몬 밀시테인과 바실리 자루빈이 포함되었다. 당시 밀시테인은 NKVD 수송총국장으로서 내부 치안과 추방을 총괄하는 자리였으나, 이 작전에서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았다.

수도플라토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전의 목표는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에 협력하는 것을 막고, 새 정부가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 작전을 가능한 한 오래 지연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쿠데타 성공 후 독일은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결정했고, 이는 발칸 전역을 예정보다 길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바르바로사 작전, 즉 소련 침공이 약 두 달 늦춰져 1941년 6월 22일로 연기되었으며, 이는 소련에 결정적인 시간을 벌어주었다. 밀시테인이 베오그라드에서 수행한 구체적 활동은 문서화되지 않았으나, 그의 관여는 스탈린 시대 국가보안 기관이 국내 탄압과 해외 비밀 작전을 동시에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제이주의 철도: 수송총국과 민족 추방

1939년 3월 31일, NKVD 내에 신설된 수송총국(ГТУ)의 초대 국장으로 임명된 밀시테인은 소련 전역의 철도망에 대한 보안 통제권을 쥐게 되었다. 이 기구는 본래 수송 경로의 방첩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설치되었으나, 곧 스탈린 체제가 벌인 민족 전체 추방 작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1940년부터 1941년까지 폴란드인 추방 열차를 조직한 데 이어, 전쟁이 발발하자 카라차이인, 칼미크인, 체첸인, 잉구시인 등 '징벌 민족'으로 분류된 집단 전체를 중앙아시아로 실어 나르는 철도 작전을 주관했다.

1944년 2월 26일, 밀시테인은 NKVD 전권위원으로 임명되어 카바르디노-발카르 자치공화국에서 발카르인 전원을 추방하는 작전을 직접 현장 지휘했다. 3월 8일 이른 아침, 단 하루 만에 발카르인 3만 7,713명 전원이 14편의 열차에 실려 카자흐·키르기스 초원으로 보내졌다. 이 작전에는 NKVD 병력 1만 7천 명이 동원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크림 타타르인 추방 열차도 그의 수송 조직이 움직였다. 그해 7월, 밀시테인은 이 공로로 수보로프 훈장 2급을 받았다. 전투공로훈장인 이 훈장을 후방의 추방 열차 조직자가 받은 이례적인 수훈은 스탈린 체제가 민족 추방을 전쟁 승리의 한 부분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