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타파 쇼카이

Мустафа Шокай
민족주의 러시아 제국 카자흐 1890–1941 ○ 의문사

투르키스탄 독립을 꿈꾸고 코칸트 자치를 이끈 카자흐 민족주의자

“나는 투르키스탄 군단을 이끌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더 이상의 협력도 거부한다. 내 결정의 모든 결과를 나는 알고 있다.” — 리벤트로프에게 보낸 편지, 1941년

무스타파 쇼카이는 러시아 제국 붕괴 후 중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자치 정부인 코칸트(투르키스탄) 자치 정부를 이끈 카자흐 민족주의 정치 지도자였다. 페트로그라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국가두마 무슬림 분과 서기로 활동하며 제정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식민 정책에 맞섰다. 1918년 볼셰비키가 코칸트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여 《야쉬 투르키스탄》 등 간행물로 투르키스탄 독립 사상을 국제적으로 전파했으며, 1941년 나치가 투르키스탄 군단 조직을 제안하자 포로수용소의 실태를 목격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 직후 베를린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나,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코칸트 자치와 알라시 운동 사이

1917년 무스타파 쇼카이는 페트로그라드에서 국가두마 무슬림 분과와 일하던 중 혁명으로 열린 정치 공간에 뛰어들었다. 그는 투르키스탄 무슬림 대회에 참여하고, 러시아어에 능통한 카자흐 정치인으로서 자디드 개혁가들과 함께 지역 자치 논의를 진전시켰다. 투르키스탄 자치는 러시아 연방 민주공화국 안에서 영토 자치를 추구했으며, 비무슬림에게도 지역 제헌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보장하려 했다. 쇼카이는 카자흐 지도자 알리한 뵈케이하노프가 이끈 알라시 운동과도 연결되어 1917년 7월 전카자흐 회의에서 제헌의회 후보로 지명되었고, 12월 제2차 전카자흐 회의에도 참가했다.

코칸트에서 열린 대회가 자치를 선포했을 때 초대 총리는 무하메트잔 티니시파예프였으며, 그가 오렌부르크로 떠난 뒤 쇼카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1917년의 자치 구상은 완전한 독립 선언과 달랐다. 쇼카이는 10주년 기고문에서 당시 대회 참가자들이 군대와 관료기구가 없는 조건에서 독립을 현실적 선택지로 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자치 정부는 자체 군사력이 거의 없었고 타슈켄트 소비에트의 군사 원정으로 1918년 2월 무너졌다. 타슈켄트 당국은 자치 정부 구성원을 불법자로 선포하고 체포에 나섰다. 알라시 오르다와 투르키스탄 자치는 모두 1917년 2월 혁명이 약속한 정치적 참여와 연방적 자치의 틀 안에서 형성되었지만, 각각의 지역 권력관계와 무장 역량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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