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로 세르히요비치 흐루셰프스키

Михайло Сергійович Грушевський

우크라이나를 독자적 역사 주체로 서술한 역사학자이자 중앙라다 의장

1917년 3월 중앙라다는 모스크바에서 유배 중이던 그를 부재중 의장으로 선출했고, 그의 귀환이 민주 세력 통합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졌다.

『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로 우크라이나를 독자적 역사 주체로 서술한 역사학자로 1917~1918년 중앙라다 의장을 맡았다. 1924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감시 속에서 1934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키예프 대학에서 안토노비치의 제자로 배우고 1894년부터 렘베르크(리비우) 대학의 교수로 일하며 열 권짜리 『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를 썼다. 키예프 루스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별개의 역사 계보를 세워 러시아 중심 서술에 맞선 이 저작은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의 지적 토대가 되었다. 1917년 3월 중앙라다 의장으로 선출되어 자치에서 독립으로 이어지는 우니베르살들을 주도했고, 1918년 4월 29일 라다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한 날 독일군의 지원을 받은 헤트만 쿠데타로 권력을 잃었다. 빈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24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과학 아카데미에서 역사 연구를 이끌었으나, 1931년 체포와 모스크바 이주, 감시 속에서 1934년 키슬로보츠크에서 수술 뒤 죽었다. 그의 학파는 1930년대 숙청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