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온 제르바스

Ναπολέων Ζέρβας

점령기 저항과 반공 정치 사이의 군인 지도자

1942년 11월, 그는 영국 공작대와 ELAS의 아리스 벨루히오티스 부대가 합류한 고르고포타모스 작전에 자기 병력을 투입했다.

그리스 육군 장교 출신인 나폴레온 제르바스는 1941년 국민공화그리스동맹(EDES)을 세우고 점령에 맞선 비공산주의 저항을 이끌었다. 그는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철교 폭파작전에서 영국 특수작전집행부, ELAS와 협력했지만, 곧 영국의 지원과 공산주의 세력과의 대립을 중시하며 공화주의에서 왕정 지지로 선회했다. 해방 뒤에는 우익 정치인과 공공질서 행정가로 활동하며 저항운동의 군사적 권위를 내전기의 국가 탄압과 결합했다.

다른 이름: 나폴레온 자르바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에피루스 해안 확보와 차미 알바니아인 추방(1944–1945)

1943년 말 ELAS와의 소규모 내전에서 아이톨로아카르나니아를 잃은 뒤, 제르바스의 EDES는 에피루스 지역에 묶여 있었다. 1944년 여름 서부 전선의 독일군이 물러가자 EDES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이오니아 해안 확보에 나섰다. 1944년 6월 18일 제르바스 휘하 부대는 영국군의 지원 아래 테스프로티아의 파라미티아를 공격해 차미-독일 연합 세력을 밀어내고 도시를 장악했고, 그해 여름 내내 진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 차미 알바니아인 약 2만 명이 에피루스에서 알바니아로 추방되었다.

차미 알바니아인은 오스만 말기 이슬람으로 개종한 알바니아계 주민으로, 그리스 국가에 통합되지 못한 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민족주의 선전에 노출되어 있었고, 일부는 추축국에 협력해 그리스 주민에 대한 보복 행위에 가담했다. 전후 그리스의 특별 협력자 재판소는 2,109명의 차미 알바니아인을 궐석으로 유죄 판결했다. 그러나 추방 자체는 지역의 알바니아계 무슬림 주민 전체에 대한 집단적 처벌로 귀결되었다. 추방 규모는 1만 4천에서 3만 5천 명 사이로 추정되며, 1944년에서 1945년 사이 EDES 계열 세력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 수는 200~300명에서 1,200명 이상까지 사료에 따라 엇갈린다.

EDES 지도부와 영국 군사 사절단은 이런 학살을 장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를 막아내지도 못했다. 제르바스가 추방과 학살을 직접 명령했다는 주장은 알바니아 민족주의 계열에서 제기되지만, 학계는 가해의 주체를 EDES의 일부 세력과 1945년의 EDES 출신 참전 용사들로 특정하고, 추방의 원인과 협력의 정도를 여전히 논쟁 중인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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