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암살과 원자력 첩보를 설계한 소련 최고의 암약 지휘관
에이팅곤은 의식이 있는 메르카데르에게 다가가 물었다. '라몬, 임무를 완수했나?' — '예, 파블로 동지.'
벨라루스 슈클로프 출신 유대인으로, 1917년 사회혁명당에 가담했으나 내전 중 볼셰비키로 전향해 고멜 체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OGPU 외국부 요원으로 중국·터키·서유럽에서 암약했고, 에스파냐 내전기 오를로프의 부관으로 공화국 금 보유분을 소련으로 반출했다. 1940년 수도플라토프와 함께 트로츠키 암살 작전을 설계했으며, 독소전쟁 중에는 제4국 부책임자로서 적 후방의 전략적 기만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종전 후 원자력 첩보 부서를 총괄했으나 1951년 '시온주의 음모'로 체포되어 12년간 복역했고, 석방 후 출판사 편집자로 여생을 보냈다.
경력 연표
- 1917–1919사회혁명당 입당; 모길료프 노동자·협동조합 활동; 1919년 RKP(b) 입당
- 1920–1924고멜 체카 — 비밀작전부장 대리, 사빈코프 토벌 중 부상; 군사아카데미 동양부 졸업
- 1925–1930OGPU 외국부 — 중국·터키 암약; 하얼빈 소련 총영사관 부영사
- 1930–1936OGPU 특수작전국 — 세레브랸스키 보좌; INO 불법작전부 책임자
- 1936–1939에스파냐 내전 — NKVD 부주재관 (Kotov 장군); 공화국 금 보유분 소련 반출
- 1940수도플라토프와 '오리 작전' 공동 지휘 — 멕시코 트로츠키 암살
- 1941–1945NKVD 제4국 부책임자 — 기만작전 '수도원'·'베레지노' 지휘
- 1945–1951NKVD/NKGB 'S' 부서 부책임자 — 원자력 첩보; 발트·서우크라이나 반소 파르티잔 제압
- 1951–1964'MGB 시온주의 음모'로 체포, 12년형; 1953년 베리야에 의해 일시 복직 후 재체포
- 1964–1981석방, 출판사 선임 편집자; 1992년 사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전략적 기만 작전: «수도원»과 «베레지노»
에이팅곤의 가장 빛나는 공작은 독소전쟁 중 제4국 부책임자로서 파벨 수도플라토프와 함께 지휘한 두 편의 전략적 라디오 게임이었다. 작전명 «수도원(Монастырь)»(1941–1944)은 아프게니 데먀노프(암호명 «Гейне»)를 가상의 반소 군주제 조직 «프레스톨»의 사자로 위장해 압베어에 침투시킨 작전이었다. 데먀노프는 독일군에 포섭된 후 소련으로 재침투해 모스크바에 정착했고, 이후 2년 넘게 게렌의 동부외국군(FHO) 부서를 향해 정교한 기만 정보를 발신했다.
이 라디오 게임의 최대 성과는 1942년 가을 르제프 방면으로 독일 예비병력을 유도한 것이었다. 독일군은 르제프 공세(작전명 «화성»)를 막아냈으나, 그 사이 남쪽에서 전개된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에서 제6군이 포위·궤멸되었다. 이 작전으로 수도플라토프와 에이팅곤은 국가보안기관 장교로는 유일무이하게 수보로프 훈장을 받았다.
스탈린그라드 승리 후 스탈린은 더 과감한 후속작을 직접 지시했다. 작전명 «베레지노(Березино)»(1944–1945)는 에이팅곤이 현장 지휘를 맡았고, 야코프 세레브랸스키, 빌리 피셔(훗날의 루돌프 아벨), 미하일 마클랴르스키 등 정예들이 작전조에 합류했다. 소련군은 포로로 잡은 독일군 중령 하인리히 셰르호른을 앞세워 베레지나 강변 습지에 2천 명 규모의 독일군 잔존 부대가 고립되어 있다는 환상을 창출했다. 오토 스코르체니의 특수부대가 구조 작전 «프라이쉬츠»를 개시했고, 1944년 9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독일 공군은 39회 출격하여 특수요원 22명, 무전기 13대, 255개 화물을 투하했다. 모두 에이팅곤의 부대 손에 떨어졌다. 이 기만은 독일의 항복 직전까지 유지되었고, 1945년 5월 5일 베를린 측은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을 중단한다"는 마지막 전문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