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즘 히크메트

Nâzım Hikmet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902–1963 ○ 자연사

28년형을 시로 살아낸 터키 혁명시인, 모더니즘과 공산주의를 결합한 20세기 문학의 거인

“내 나라의 푸른 하늘 아래 평범한 마을 공동묘지의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묻어다오” — 모스크바 유언, 1963년

오스만 살로니카 출신의 나즘 히크메트는 1921년 소련에서 마야콥스키와 레닌을 만나 평생의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터키로 돌아와 자유시를 도입하며 문학 혁신을 일으켰다. 《835행》에서 16,000행 대서사시 《내 조국의 인간 풍경》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삶과 독립전쟁을 노래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군사법정의 28년형으로 12년간 수감되었고 피카소·사르트르·로브슨의 국제 석방운동을 촉발했다. 1951년 소련 탈출 후 13년간 세계평화운동과 반식민주의에 헌신했으며, 시는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유네스코는 2002년을 '나즘 히크메트의 해'로 선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38년 재판과 1950년 단식투쟁

1938년 군사법정은 히크메트가 육군전쟁학교 생도들에게 선전했다는 혐의로 15년형을, 해군 지휘부 군사법정은 별도 혐의로 20년형을 선고했다. 형법 조항에 따른 감형 뒤 총형은 28년 4개월이었다. 그는 앙카라·창크르·부르사·이스탄불의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1950년 4월, 국회가 사면법안을 상정하지 않은 데 항의해 부르사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병세가 악화되어 단식을 중단했다가 재개했고, 어머니 젤릴레와 시인 오르한 벨리, 멜리흐 제브데트, 옥타이 르팟도 연대 단식에 나섰다. 단식은 청원과 잡지 발간을 동반한 대중운동으로 번졌다. 새 정부는 일반사면법을 통과시켰다. 터키 문화관광부는 그가 13년 복역 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고 기록하지만, 나즘 히크메트 문화예술재단은 12년 7개월 복역 후 1950년 7월 15일 석방 통보를 받았다고 적는다. 일부 영어권 서술은 5월 19일 단식 중단과 석방을 함께 기록하지만, 터키 측 기록에서는 5월 19일은 단식 중단일이고 실제 석방일은 7월 15일이다. 따라서 복역 기간도 자료에 따라 13년 또는 12년 7개월로 제시된다.

석방 뒤 히크메트는 일자리를 얻거나 작품을 발표하기 어려웠다. 1951년 군복무 소집령을 받은 그는 병든 몸으로 터키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해 루마니아 선적 선박을 타고 흑해를 건너 터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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