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압크센티예프

Николай Дмитриевич Авксентьев

SR당 창건자이자 콜차크에게 전복된 전러시아 임시정부의 마지막 의장

트로츠키는 그를 두고 '정치가의 완전한 캐리커처였다. 오룔의 여자 신학교에서 어학을 가르치는 매력적인 교사 — 그게 전부다'라고 평했다.

SR 창립자이자 우파 지도자로서, 1905년 혁명기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에서 SR 분파를 이끌었고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내무장관과 예비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내전기에는 통일된 반볼셰비키 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의 정점으로서, 우파 국가회의에서 전러시아 임시정부(우파 디렉토리)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18년 11월 콜차크 쿠데타로 체포·추방되었고, 이후 파리와 뉴욕에서 망명 언론 활동을 했다. 그의 정치 궤적은 러시아 혁명기 민주적 사회주의가 무장한 좌우 세력 사이에서 붕괴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우파 디렉토리와 콜차크 쿠데타

10월 혁명 직후 압크센티예프는 제헌의회 방어를 내세운 반볼셰비키 저항의 중심에 섰다. 그는 「조국과 혁명 구제위원회」의 조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제헌의회 방어 동맹」 지도부에도 참여했다가 새 정권에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수감되었다. SR 출신 법무인민위원 이사크 시테인베르크의 개입으로 석방된 뒤, 1918년 3월에는 여러 반볼셰비키 세력을 묶는 「러시아 부흥 동맹」 지도부에 들어갔다. 같은 해 5월 말 SR 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시베리아로 향했는데, 당은 시베리아를 볼셰비키 정권에 대한 저항의 거점으로 보았다.

1918년 9월 23일 우파 국가회의는 동러시아에 흩어진 반볼셰비키 정부들을 통합한 전러시아 임시정부, 곧 「우파 디렉토리」를 수립했다. 회의에서 선출된 구성은 압크센티예프(의장), 입헌민주당 아스트로프, 볼디레프 장군, 볼로고츠키, 차이콥스키였으나, 실제로는 자리에 있던 압크센티예프, 볼디레프, 볼로고츠키, 입헌민주당 비노그라도프, SR 젠지노프 5인이 디렉토리를 이뤘다. 이 정부는 코무치(제헌의회 의원 위원회), 시베리아 임시정부, 우랄 정부, 바시키르 정부, 알라시-오르다, 여러 카자크 군정을 한 지붕 아래 묶었다. 10월 9일 디렉토리는 옴스크로 옮겼고, 시베리아 정부의 법령을 그대로 승계하면서도 지역·민족·카자크 정부들을 폐지하고 러시아 재통일과 협상국과의 조약 회복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통합은 서로 상극인 세력의 잠정적 타협이었다. SR 출신 의원들은 체르노프가 이끄는 제헌의회 위원회에 대해 책임을 요구받으며 압박받았고, 군부와 관료·장교층은 단독 독재를 원했다. 1918년 11월 5일 콜차크 제독이 전쟁·해군 장관에 취임한 지 보름도 안 되어, 11월 18일 밤 콜차크는 연합국, 장교단, 카자크 부대의 지지에 힘입어 옴스크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디렉토리를 해산했다. 압크센티예프와 젠지노프, 아르구노프는 크라실니코프 부대에 체포되었다가 국외로 추방되었고, 쿠데타를 도운 각료 대부분은 그대로 콜차크의 옴스크 정부를 채웠다. 무장한 좌우 사이에서 통일된 민주 정부를 세우려던 이 시도는 이렇게 막을 내렸고, 압크센티예프의 공직 경력도 여기서 마감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