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골리친

Николай Дмитриевич Голицын

스스로 무능을 고백한 제국의 마지막 총리

1925년, 반신불수 상태로 총살되러 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인생에 지쳤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총리. 1917년 1월 황제의 임명을 받았을 때 스스로 '무능력'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충신으로서 받아들인 뒤로도 2월 혁명의 파고 앞에서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 혁명 후 사수공과 공동 농장 경비원으로 생계를 잇다가, 1925년 '리체이스트 사건'에 연루되어 반신불수 상태로 총살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지막 수상: 권력을 넘겨받다 놓친 두 달

1916년 12월 말,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살해되고 궁정이 공황에 빠진 직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권유에 따라 골리친을 각료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골리친은 자신이 '수상 역할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오랫동안 임명을 철회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충신으로서 마침내 이를 받아들였다. 시종 알렉세이 타티시체프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본질적으로 무력한' 상태로 직무에 들어갔다.

수상이 된 골리친은 두마와의 화해를 주장하며, 라스푸틴의 인물로 여겨지던 내무대신 알렉산드르 프로토포포프의 해임을 황제에게 청원하고 두마 해산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는 황제와 황후의 불만을 샀을 뿐이었다. 1917년 2월 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결단력을 보이지 못했고, 2월 27일 미하일 로지얀코 등 두마 지도자들의 압력 아래 '수도 사태가 극히 심각하다'며 권위 있는 사회 인사를 수상으로 임명할 것을 청하는 전보를 황제에게 보냈다. 그러나 황제는 골리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음 날인 2월 28일 혁명군이 마리인스키 궁전을 점령했다. 골리친은 다른 각료들과 함께 자택에서 체포되었고, 이후 4월 21일 임시정부의 특별조사위원회에 증언했다. 그가 평생 지켜 온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신조는, 혁명이 요구한 결단 앞에서 무기력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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