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예피모비치 크루치나

Николай Ефимович Кручина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8–1991 ✕ 추락사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당 금고를 지킨 마지막 재무관

1990년 7월 9일 제28차 당대회 연단에서 크루치나는 당 중앙위가 49억 루블의 예비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처음 공개했다. 소련 공산당 역사상 당 재정의 실체가 대의원들 앞에 드러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알타이 농촌 출신의 농학도로 콤소몰과 당 농업 부문에서 경력을 쌓아, 1965년부터 13년간 첼리노그라드 주당 제1서기로 카자흐 초원의 처녀지 개간을 지휘하며 사회주의 노동 영웅이 되었다. 1983년 고르바초프의 신임으로 당 중앙위 업무관리국장에 올라 당의 방대한 재산과 해외 원조 자금, 이른바 '당의 금'을 총괄했다. 1990년 제28차 당대회에서 처음으로 당 예산을 공개해 49억 루블의 예비 기금을 밝혔으나, 쿠데타 실패 며칠 후 모스크바 자택 발코니에서 떨어져 숨졌다. 그의 죽음과 전임자 파블로프·국제부 간부 리소볼리크의 연이은 추락사는 당 자금의 행방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중심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28차 당대회 당 금고 보고, 1990년

1990년 7월 9일 제28차 당대회 열한 번째 회의에서 크루치나는 글라스노스트를 배경으로 처음으로 당의 재정을 대표단 앞에 공개해야 했다. 그는 서기국을 대신해 70건이 넘는 질문에 답하면서, 중앙위 기구가 2352명(책임간부 1322명, 기술직 1020명)이며, 평균 봉급은 406루블, 책임간부는 533루블, 기술직은 240루블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험 기금, 보험 예비금의 형태로 우리는 중앙위 계좌에 약 49억 루블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공표했다. 해외 은행 예금과 해외 재산은 없다고 부인하면서 달러 수입의 원천은 해외 근무 당원의 당비뿐이며 그 연평균액은 749만 7000루블, 환자는 연간 약 3200만 인화 루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예산과 결산을 승인해 온 기구는 폴리트뷰로였고, 당원 다수와 대표단은 당 금고를 통제한 적이 없다는 점이 이 문답에서 드러났다. 발언은 거듭 제동이 걸렸다. 대표단은 정치국원의 국가 다차와 특권, "기타 비용" 항목의 내역, 환율 적용을 따졌고, 볼디레프는 이 항목에 토론 시간을 배정하자고 요구했으나 회의장에서는 "그만하자"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해 여름 당 재산을 두고 벌어진 이 첫 공개 회계는 1년 뒤 크루치나의 죽음, 사라진 당 자금을 둘러싼 의혹과 맞물려 다시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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