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마르티노프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Марты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0–1998 ○ 자연사

군수에서 물자공급까지, 계획경제의 동맥을 관리한 기술관료

1957년 흐루쇼프의 소브나르호스 개혁으로 수십 명의 연방 차관들이 지방으로 밀려났다. 마르티노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슈켄트로 보내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하던 발령은 아니었지만, 일이 있는 곳으로 간다.'

소련 경제 관료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탄약 부인민위원으로 군수 공급을 총괄했고, 1965년부터 20년간 국가물자공급위원회(고스스나브)에서 근무하며 소련 계획경제의 물자 유통을 실제로 작동시킨 인물이다.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툴라 병기공장장에서 시작해 각료회의 부의장 겸 고스스나브 의장(1976~1985)까지 오르며 50년간 소련 산업의 물적 토대를 떠받친 실무형 기술관료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스스나브: 계획경제의 물자 배분을 20년간 운영하다

마르티노프의 이름을 소련 경제사에 남긴 것은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이십 년 동안 근무한 국가물자공급위원회, 즉 고스스나브였다. 고스스나브는 계획경제에서 시장을 대신해 수만 종의 공업 제품을 기업들 사이에 배분하는 기관이었다. 흐루쇼프의 소브나르호스 개혁이 지역별 분권으로 공급 사슬을 단절시키자, 1965년 코시긴 개혁은 소브나르호스를 폐지하고 중앙 부처 체제를 복원하면서 물자공급을 별도의 독립 부문으로 삼아 고스스나브를 재창설했다. 마르티노프는 초대 의장 딤시츠 아래 제1부의장으로 들어가 기구의 실무를 이끌었고, 1976년부터는 각료회의 부의장을 겸한 의장으로 올라 물자 유통 전체를 총괄했다.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은 '계획 속의 배급'이었다. 가격과 이윤이 아니라 고스플란이 짠 물자 균형표에 따라 강철·시멘트·곡물·기계를 기업에 할당해야 했고, 고스스나브는 그 배분의 집행 기구였다. 코시긴 개혁이 기업 자율성과 이윤 지표로 시장 원리를 심으려 했던 동안 마르티노프는 그 반대 방향인 중앙 집중식 물자 배분을 운영했으며, 이는 흐루쇼프의 분권 실험에서 밀려났던 그가 다시 중앙 물류의 동맥을 거머쥔 복권이기도 했다. 1980년 칠십 회 생일을 맞아 받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는 이 배급 기구를 안정적으로 운영한 공로에 대한 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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