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파니체프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анич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인 1934–

페레스트로이카 속 공작기계 공업을 지키려 했던 마지막 장관

2012년 인터뷰에서 당시 업계 현실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발전 프로그램은 이미 많이 채택되었다. 공작기계 분야만 30개 이상의 정부 문서가 나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니콜라이 파니체프는 소련 공작기계·공구공업의 마지막 장관(1986~1991)으로, 벨라루스 농촌 출신 선반공에서 출발해 25년간 레닌그라드 일리치 공작기계공장에서 공장장까지 오른 생산 행정가였다. 장관 시절 CNC 공작기계·유연생산모듈·로봇복합체 등 최신 기술을 도입했으나, 행정명령 체계와 시장 개혁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공작기계협회 '스탄코인스트루멘트'를 설립해 업계를 대변했고, 전직 소련·러시아 장관 원로 모임인 공공평의회 의장을 맡았다. 2004년 회고록 『균열』에서 계획경제의 성취와 개혁 실패를 증언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6~1991년 장관기: 자동화 전환과 소기업 육성

니콜라이 파니체프가 장관으로 재임한 1986~1991년은 소련 공작기계 공업이 양적으로는 급격히 줄고 질적으로는 자동화 쪽으로 방향을 바꾸던 시기였다. 그가 남긴 수치에 따르면 업계는 1986년 한 해 22만 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했으나 1991년에는 7만 6천 대로 줄었다. 다만 그 가운데 2만 6천 대가 수치제어(CNC) 공작기계였고 5,500대가 머시닝센터와 유연생산모듈이었다. 범용 공작기계를 대량으로 찍어내던 생산이 첨단 장비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1980년대 말 소련은 공작기계 생산에서 세계 3위, 설비 소비에서 2위였고 일본, 캐나다, 미국, 서독에도 공작기계를 수출했다.

그는 이런 전환을 행정명령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업계 내부의 역량을 키우려 했다. 재임 말기 업계 안에는 100개가 넘는 소기업이 있었고, 그는 그 지원과 육성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을 마련해 별도의 명령을 발표했다. 공작기계 한 대에는 전기, 전자, 유압 부품을 대는 공급업체가 수백 곳에 이르는데, 대형 전기, 전자 부문 부처가 그런 소량 부품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가 직접 소기업을 키워 공급망을 메워야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장장 시절에는 브리가다 계약(бригадный подряд)을 활용해 항공우주용 신형 자이로스코프의 제조 기술을 완성하기도 했다.

개혁의 방향 자체는 그도 통제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기업법을 비롯한 페레스트로이카기의 입법은 기업에 권한만 주고 그 권한을 뒷받침할 제도와 국가의 이해를 규정하지 않은 채 추진되었다. 1991년 무렵에는 개혁 문서가 서구 컨설턴트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는 부처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그는 말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