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스코프에서 차르의 퇴위를 강요한 북부전선 사령관
니콜라이 2세는 유형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모든 적과 박해자를 용서할 힘을 신에게서 받았지만, 루즈스키 부관장군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갈리치아 정복자라는 명성을 얻은 제정 러시아의 보병대장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제3군과 북서전선·북부전선을 지휘했다. 1917년 2월 혁명 당시 프스코프에 주둔한 북부전선 사령관으로서 니콜라이 2세의 열차를 맞았고, 알렉세예프 참모총장과 전선 사령관들의 만장일치 전보를 전달하며 차르에게 책임내각 도입과 퇴위를 압박했다. 한 시간 반에 걸친 논쟁 끝에 니콜라이 2세의 뜻을 꺾은 결정적 순간은, 군부가 더 이상 왕조를 지키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전쟁 말기 붉은 군대 입대를 '러시아인끼리의 전쟁'이라 거부하고 광천수 휴양지에 머물다, 1918년 백인민 체카에 의해 인질로 살해되었다.
경력 연표
- 1877–1878러시아-튀르크 전쟁 참전, 고르니 두브냐크 요새 공격 중 부상
- 1881니콜라예프 참모대학 졸업, 이후 키예프·빌노 군관구 참모 역임
- 1904–1905제2만주군 야전참모장으로 러일전쟁 참전
- 1909보병대장 진급, 군사평의회 위원, 1912년 야전규정 공동 저자
- 1914.07–09제3군 사령관, 갈리치아 전투에서 리보프 점령
- 1914.09–1915.03북서전선 총사령관
- 1915.08–1917.04북부전선 총사령관, 1917년 3월 프스코프에서 니콜라이 2세의 퇴위를 압박
- 1917.04임시정부와의 군기 유지 갈등으로 사임, 캅카스 광천으로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