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이후 붕괴 직전의 외무장관
1991년 8월 21일, 쿠데타 한복판에서 판킨은 체코슬로바키아 TV에 출연했다. 소련 대사 중 유일하게 '야나예프의 치명적 실수'라며 공개 비판하고, 즉각 철회를 촉구한 순간이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편집장을 지내며 신문을 소련 최고의 청년지로 키운 언론인이자, 국가상을 수상한 문학비평가. 외교관으로 전환해 8월 쿠데타 당시 유일하게 공개 비판한 대사였으며, 쿠데타 실패 후 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으로 이스라엘과의 외교 수립, 미소 군축 협상 개시를 주도했다.
경력 연표
- 1991.8–11외무장관
관련 역사 사건
언론인에서 외교관으로
판킨은 소련 외무장관 중에서도 가장 이례적인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1953년 모스크바대학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 입사했다. 특파원, 부편집장을 거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편집장을 지내며 이 신문을 소련에서 가장 대담하고 인기 있는 청년지로 키웠다. 1973년 전연방저작권청(VAAP) 의장으로 자리를 옮겨 1982년까지 소련의 국제 저작권 교류를 총괄했다. 문학비평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해 1982년 《엄격한 문학》으로 소련 국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외교관으로 전격 발탁되어 스웨덴 대사로 8년간 재임했고,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옮겼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소련 대사 중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비난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이 용기 있는 행동이 고르바초프의 눈에 띄어 쿠데타 실패 직후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