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베르몬트-아발로프

Павел Бермондт-Авалов
러시아 1877–1973 ○ 미국 망명 중 사망

독일 자유군단을 이끌고 리가를 공격한 서러시아 의용군 사령관

러시아 제국군의 기병 장교 출신으로 스스로 그루지야 공가의 후예를 자칭해 「아발로프 공」이라는 이름을 썼다. 1919년 독일에서 러시아인 포로로 반볼셰비키 부대를 조직해 라트비아로 들어왔고, 연합국의 철수 요구를 거부한 폰 데어 골츠의 독일 병사 수만 명을 받아들여 서러시아 의용군을 만들었다. 유데니치가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하던 10월, 그는 북서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10월 8일 리가를 공격해 다우가바 서안 교외를 점령했다. 라트비아군이 영국·프랑스 함정의 지원으로 11월 11일 반격에 성공하고 리투아니아군이 라드빌리슈키스에서 그의 부대를 격파하면서 12월 독일로 철수했다. 망명 뒤 베를린에서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을 이끌었고, 1939년 나치 독일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갔으며 1973년 뉴욕에서 죽었다. 출신에 관한 자료가 서로 어긋나 출신 국가는 비워 두었다.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독일계 병력을 대거 받아들인 서러시아 의용군을 지휘했다. 반볼셰비키를 표방했으나 1919년 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독립군과 싸웠고 리가 공격 실패 뒤 망명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