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유군단을 이끌고 리가를 공격한 서러시아 의용군 사령관
유데니치의 나르바 합류 명령을 거부한 그는 1919년 10월 ‘러시아 국가권력의 대표자’를 자처하며 리가로 진격했다.
「아발로프 공」을 자칭한 러시아 기병 장교로 1919년 철수를 거부한 독일 자유군단 수만 명을 서러시아 의용군으로 묶어 10월 리가를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 망명 뒤 베를린에서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을 이끌었고 1973년 뉴욕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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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러시아 백색운동서러시아 의용군 사령관대표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01군악장으로 제1아르군 연대 입대
- 1904–1905러일전쟁 참전,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 수훈
- 1918키예프 주둔 남군 징병·방첩 책임자
- 1919.04잘츠베델 포로수용소에서 의용 분견대 편성
- 1919.07미타바에서 그라프 켈레르 부대 결성
- 1919.09서러시아 의용군 총사령관 자처, 10월 리가 진격
- 1925회고록「볼셰비즘과의 투쟁」간행
- 1933러시아 민족사회주의 운동(론트) 창설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러시아 제국군의 기병 장교 출신으로 스스로 그루지야 공가의 후예를 자칭해 「아발로프 공」이라는 이름을 썼다. 1919년 독일에서 러시아인 포로로 반볼셰비키 부대를 조직해 라트비아로 들어왔고, 연합국의 철수 요구를 거부한 폰 데어 골츠의 독일 병사 수만 명을 받아들여 서러시아 의용군을 만들었다. 유데니치가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하던 10월, 그는 북서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10월 8일 리가를 공격해 다우가바 서안 교외를 점령했다. 라트비아군이 영국·프랑스 함정의 지원으로 11월 11일 반격에 성공하고 리투아니아군이 라드빌리슈키스에서 그의 부대를 격파하면서 12월 독일로 철수했다. 망명 뒤 베를린에서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을 이끌었고, 1939년 나치 독일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갔으며 1973년 뉴욕에서 죽었다. 출신에 관한 자료가 서로 어긋나 출신 국가는 비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