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속에서 왕정의 정통성을 지킨 마지막 국왕
1941년 3월 27일, 두산 시모비치가 그에게 말한 순간이었다. "폐하, 이제부터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페타르 2세는 아버지 알렉산다르 1세의 암살 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1941년 3월 27일 쿠데타로 섭정 체제가 무너지고 즉시 성년으로 선포되었지만, 곧 추축국 침공으로 런던의 망명정부를 이끌어야 했다. 그의 왕권은 점령에 맞선 국가적 연속성을 상징했으나, 망명정부의 분열과 파르티잔의 군사적·정치적 승리 속에서 실제 통치 기반을 잃었다. 1945년 왕정이 폐지된 뒤에도 귀환하지 못한 그는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정통성을 둘러싼 미해결 긴장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4–1945 군주·왕실 · 유고슬라비아
경력 연표
- 1934국왕 즉위, 섭정 아래
- 1934–1941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명목상 국왕
- 1941.03.27쿠데타 뒤 성년 국왕으로 선포
- 1941.04–06추축국 침공 뒤 정부와 함께 망명
- 1941–1945런던 유고슬라비아 왕정 망명정부의 국가원수
- 1944.09유고슬라비아 군인들에게 티토 합류를 호소
- 1945왕정 폐지로 폐위
- 1945–1970미국에서 망명 생활
- 1970미국 덴버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티토와의 타협과 왕정의 종말
런던 망명정부가 국내의 저항세력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페타르 2세의 왕권은 연합국의 승인에 의존했고, 국내에서는 파르티잔이 별도의 권력 기반을 세웠다. 1944년 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페타르에게 보지다르 푸리치 내각을 교체하고 드라자 미하일로비치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했다. 페타르는 6월 1일 이반 슈바시치에게 총리직을 맡겼고, 슈바시치는 티토와 협상해 망명정부와 파르티잔 운동의 연합을 추진했다. 7월 미국 전략정보국이 전한 티토의 발언은 이 합의가 파르티잔 내부에서도 논란을 일으켰으며, 망명정부의 권위가 국내 대중의 지지보다 연합국의 외교적 승인에 놓여 있었음을 전했다. 이는 티토 측근을 통해 전달된 비공개 보고이므로 당시 파르티잔 여론에 대한 한 가지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n\n슈바시치는 페타르와 사전 협의 없이 티토와의 합의를 왕에게 통보했고, 페타르는 1944년 9월 12일 BBC 방송에서 국민들에게 티토를 지지하라고 호소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국은 허용되지 않았다. 1945년 3월 베오그라드에서 섭정평의회가 통치를 시작했고, 페타르를 비롯한 왕정 측은 그 구성이 티토가 지명한 인사들로 이루어졌다며 반발했다. 제헌의회는 11월 29일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했다. 1946년 페타르는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고슬라비아 국가기금의 지원이 끊겨 가족과 왕실 수행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는 왕권 상실이 정치적 지위뿐 아니라 망명 중의 재정 기반도 약화시켰음을 보여주는 그의 당대 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