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최초 연정의 좌파 에스에르 인민위원, 당의 '핵심 축'
'프로샨은 1918년 7월까지 소비에트 권력을 강화하는 데, 1918년 7월 이후 그것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 레닌, 〈프로샨 동지를 기리며〉, 1918년 12월
좌파 사회혁명당의 핵심 지도자이자 소비에트 최초 연립정부의 우편전신인민위원으로, 레닌·트로츠키·스탈린과 함께 인민위원회 임시집행위원회 위원(1918년 2월)을 지냈다. 인민위원 재임(1917.12–1918.3) 중 우편전신 공무원들의 사보타주를 종식시키고 통신 업무를 정상화했으며, 최고군사회의 정치위원과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상임위원을 겸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에 항의해 사임한 후 1918년 7월 좌파 사회혁명당 봉기의 지도부로 활동했고, 지하 잠복 중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마리야 스피리도노바는 그를 '좌파 사회혁명당의 내적 건설자, 기본 동력, 핵심 축'이라 평가했다.
경력 연표
- 1903오데사 대학에서 에스에르당 입당, 학생 조직가로 활동
- 1905오데사 교도소 정치범 탈옥 기도로 체포, 6년 카토르가 선고
- 1910–1913유형지 탈출 후 체포되어 3년 추가 카토르가; 시베리아 유형 중 해외 탈출
- 19172월 혁명 후 귀국; 헬싱포르스에서 좌파 에스에르 지도자, 《사회주의-혁명가》 편집장; 제2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선출
- 1917.12우편전신인민위원 취임
- 1918.2–3인민위원회 임시집행위원회 위원; 최고군사회의 정치위원
- 1918.3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항의해 인민위원직 사임
- 1918.7좌파 사회혁명당 봉기 지도부 참여; 진압 후 지하 잠복, 궐석 3년형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