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프 산업화의 설계자, 트러스트 체제로 글라브키즘에 맞서다
“우리는 산업 관리의 분권화, 관리 기관을 공장 가까이 가져가는 것, 동시에 전체 산업 지도의 중앙집권화라는 원칙을 토대로 해야만 올바르게 관리할 수 있다.” — 글라브키즘에 맞서 트러스트 체제를 옹호하며.
모스크바 상인 가문 출신의 볼셰비키 엔지니어이자 경제 관료로, 1921년부터 1925년까지 러시아 최고국민경제회의(VSNKh) 의장을 지내며 네프 시기 산업 조직의 골격을 설계했다. 소르모보 공장에서 소련 최초의 전차 생산을 총괄했고, 군수공업회의 의장으로서 내전기 군수 공장 간 계획적 생산 협력을 도입했다. 트러스트를 광범한 자율성을 가진 국가 기업 연합으로 육성하며 중앙집권적 '글라브키즘'에 맞섰고,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한 주요 양허위원회를 이끌었다.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암토르그 사장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소련-미국 외교 관계 수립에 기여했으나, 1937년 대숙청에 휩쓸려 체포되어 1938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 1905볼셰비키에 합류, 보로네시 당 위원회 군사조직 책임자
- 1906–1908모스크바 당 위원회 위원, 사회민주주의 학생조직 지도
- 1909–1914모스크바 시청 엔지니어, 도시 가스망 책임자
- 1917고멜 소비에트 군사부문 의장, 시 두마 의장, 11월 혁명위원회 의장
- 1918–1921VSNKh 화학공업 부문 위원, 우랄·북부 화학산업 국유화 전권대표
- 1919–1925군수공업회의(국방공업 총국) 의장
- 1921–1925VSNKh 의장 겸 RSFSR 인민위원회 위원, 주요 양허위원회 의장
- 1926–1929북카프카스 지역집행위원회 의장
- 1930–1934암토르그(소련 대미 무역회사) 사장
- 1935–1937RSFSR 지방공업 제1부인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