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파데예비치 로마코

Пётр Фаддеевич Ломако
소련 러시아 1904–1990 ○ 자연사

소련 비철금속공업의 창설자이자 고스플란 의장

1988년 기네스북이 46년 장관직을 기록할 때, 로마코는 이미 2년 전 은퇴한 상태로 모스크바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소련 비철금속공업의 창설자로 46년간 장관직을 수행한 금속공학자다. 알루미늄·타이타늄 산업의 기초를 닦고 전시 우라늄 공급으로 핵개발을 뒷받침했으며, 고스플란 의장으로 계획경제 재중앙화를 이끌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시 공업 대피와 우라늄 — 원자폭탄의 숨은 공로자

독소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로마코는 비철금속공업 인민위원으로서 서부 지역 공장들을 우랄로 이전하는 대규모 대피 작전을 지휘했다. 알루미늄·니켈·납 등 방위산업의 기초 금속을 생산하는 시설들을 신속히 동부로 옮겨 전시 생산 체제를 갖추었으며, 이 공로로 1942년 첫 레닌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로마코의 진정한 역사적 기여는 우라늄 공급에서 드러난다. 1942년 9월 28일, 스탈린은 국방위원회 비밀 결정 제2352호 「우라늄 연구 조직에 관하여」에 서명했다. 이 문서에 따라 로마코는 자신의 비철금속 부처가 채굴·정련한 우라늄을 원자핵 연구소(훗날 쿠르차토프 연구소)에 직접 공급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전시 소련에서 우라늄은 비철금속공업 인민위원부 관할 아래 있었기에, 원자폭탄 개발의 첫 단추는 로마코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1944년 12월, 국방위원회는 우라늄 채굴을 내무인민위원부(NKVD)로 이관하기로 결정했고, 로마코는 이관 책임자로 임명되어 NKVD 측 책임자인 아브라미 자베냐긴과 인계 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소련의 우라늄 생산이 NKVD 체계로 넘어갔지만, 초기 2년간의 핵심 공급망을 책임진 것은 로마코의 비철금속 부처였다. 소련 핵개발사의 전사(前史)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그러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우라늄 공급과 소련 핵개발

표트르 로마코는 소련 핵무기 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결정적인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1942년 9월 28일, 스탈린은 국방위원회 비밀결정 제2352호 '우라늄 연구 조직에 관하여'에 서명했고, 이 문서에 따라 로마코는 자신이 이끄는 비철금속인민위원회에서 원자핵 연구소로의 우라늄 공급을 개인적으로 감독하게 되었다.

당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 중이었고, 우라늄은 전략적으로 극도로 희소한 자원이었다. 로마코는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계곡에 위치한 기존 광산들로부터 우라늄 원광을 확보하고, 대피한 연구시설로의 안정적 공급 경로를 조직했다. 1944년 12월, 국방위원회 결정 제7102호에 따라 우라늄 광석 채굴이 비철금속인민위원회에서 NKVD 관할로 이관되었을 때, 로마코는 그 이관 작업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아브라함 자베냐긴과 협력했다.

로마코의 우라늄 공급은 1949년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RDS-1 실험 성공으로 이어지는 연구개발의 토대가 되었다. 전후에도 그는 비철금속공업 장관으로서 핵무기 및 원자력 산업에 필요한 희귀금속과 특수재료의 생산 체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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