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강·라오수스 반당연맹」으로 건국 후 첫 고위 숙청에 걸린 화둥의 지도자
천이와 함께 화둥 당을 이끌다 1953년 중앙조직부장으로 베이징에 갔다. 1954년 가오강과 함께 숙청되고 1955년 당적이 박탈되었으며, 1975년 구금 중 사망했고 복권되지 않았다.
장시 출신으로 1941년 완난 사변 뒤 신4군 정치위원이 되었고 국공내전기 화둥국 서기로 천이와 함께 화둥을 관할했다. 건국 후 화둥 군정위원회 주석과 중앙조직부장을 맡았다. 1953년 가오강과 함께 류사오치·저우언라이를 밀어내려 했다는 이유로 1954년 「가오강·라오수스 반당연맹」으로 비판받고 1955년 체포되었다. 재판 없이 수감되었다가 1975년 옥중에서 사망했으며, 가오강과 달리 공식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이름: 요수석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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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955
정치·당 지도
- 화둥국 서기·중앙 조직부장1949–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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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5
중국공산당 혁명군(1949년 이전)신사군 정치부 지도
군사·지휘 -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화둥 군정위원회 주석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25중국공산당 입당
- 1941–1945신사군 정치부 지도
- 1949–1952화둥 군정위원회 주석
- 1953–1954중공 중앙 조직부장
- 1953–1954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장
- 1954가오강 사건과 함께 실각
관련 역사 사건
화동국 지도와 전후 화둥의 당 조직
1945년 9월 중국공산당 중앙은 화동국을 설치하고 화중분국을 그 산하에 두었다. 화동국은 화둥 지역 당 조직의 최고 지도기관으로, 중앙의 전략을 지역에서 실행하고 여러 사업을 조정했다. 중앙은 같은 해 11월 라오수스를 서기로 임명했으며, 천이와 리위는 12월 부서기가 되었다. 1949년 10월 중앙은 화동국을 개편해 라오수스를 제1서기로, 천이를 제2서기로 임명했다. 이 직책은 라오수스가 건국 전후 화둥에서 맡은 당 조직상의 지도적 역할을 보여준다. 국가인권기억고의 조직 설명은 화동국이 화둥의 당 조직과 여러 업무를 지도했다고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