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대신 러시아와의 타협을 택한 폴란드 민족민주주의의 창시자, 피우수트스키의 맞수
1864년 바르샤바 근교에서 태어나 생물학을 공부했다. 1893년 국민연맹, 1897년 국민민주당(엔데차)을 세워 민족을 계급보다 앞세우는 폴란드 민족주의를 이끌었다. 러일전쟁 때 도쿄로 가서 피우수트스키의 봉기 계획을 일본이 돕지 못하게 막았고, 1905년 혁명에서는 러시아 당국과의 협력을 택해 사회주의 정당들과 맞섰다. 제2·제3 국가두마에서 폴란드 의원단을 이끌며 독일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파리 폴란드 국민위원회를 이끌었고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다. 공공연한 반유대주의자로 유대인 상점 불매 운동을 조직했다.
다른 이름: 로만 스타니스와프 드모프스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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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1928
폴란드 국민연맹대표
정치·당 지도 -
1907–1909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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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93.04국민연맹 공동 창립, 초대 지도자
- 1897국민민주당(엔데차) 창립
- 1904도쿄에서 피우수트스키의 봉기 계획에 반대
- 1907–1909제2·제3 국가두마 의원, 폴란드 의원단 의장
- 1917.08–1919파리 폴란드 국민위원회 위원장
- 1919파리 강화회의 폴란드 대표, 베르사유 조약 서명
- 1923.10.27–1923.12.14폴란드 외무장관
- 1926대폴란드 진영 창설
관련 역사 사건
1905년: 혁명의 반대편에서
러일전쟁이 터지자 피우수트스키는 일본의 지원으로 폴란드 봉기를 일으키려 했다. 드모프스키는 1904년 그 역시 도쿄로 가서, 봉기는 실패할 것이며 일본이 이를 도와서는 안 된다고 일본 측을 설득했다. 1905년 혁명이 폴란드 왕국을 휩쓸자 그는 바르샤바로 돌아와 러시아 당국과 협력하는 쪽을 택했고, 6월 우치 봉기에도 반대했다. 국민민주당 계열 신문은 「사회주의 무정부 상태」를 진압하라고 요구했고, 국민연맹의 노동자 활동가들은 민족노동자연맹을 세워 공장에서 사회주의자들과 주도권을 다투었다. 우치에서는 국민민주당 계열 무장대가 폴란드 사회당 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였고, 1906~1907년 폴란드인 노동자끼리 서로 죽이는 「형제 살해 전쟁」이 이어졌다. 사회주의자들은 그가 폴란드 사회당을 겨냥해 차르 정부와 밀약을 맺었다고 의심했다.
그가 원한 것은 봉기가 아니라 합법 정치로 얻는 자치였다. 사회주의 정당들이 제1두마 선거를 거부하는 사이 국민민주당이 폴란드 왕국의 두마 대표를 차지했고, 드모프스키는 1907년 제2두마와 제3두마 의원으로 당선돼 폴란드 의원단을 이끌었다. 1908년의 「독일, 러시아, 그리고 폴란드 문제」에서 그는 폴란드의 주적은 독일이며 러시아 제국 안에서 자치를 얻어 독일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은 피우수트스키와 정반대의 길이었고, 두 사람의 대립은 이후 30년 동안 폴란드 정치의 두 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