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체코 체코 1901–1952 ✕ 처형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1948년 2월 쿠데타를 조직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실무 책임자

1947년 9월 코민포름 회의에서 슬란스키는 모스크바의 권력 장악 지령을 받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국제 무대에서처럼 국내 전선에서도 공세로 전환했다' — 1948년 2월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1929년 KSČ 중앙위원·정치국원이 된 후 고트발트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전 중 모스크바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방송을 이끌고 1944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에 참가했다. 1945~1951년 서기장으로서 당 기구를 장악해 1948년 2월 쿠데타의 실무를 지휘,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비에트형 인민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시켰다. 1951년 체포되어 1952년 반국가 음모·트로츠키주의·티토주의·시오니즘 혐의로 사형당했으며, 이 재판은 동구권 숙청 중 가장 뚜렷한 반유대주의 성격을 띠었다. 1963년 사법 복권, 1968년 당적 회복.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4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 — 산악의 당파 지도자

1944년 초, 스탈린은 고트발트에게 슬란스키와 얀 슈베르마를 키예프로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슬란스키는 그곳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파르티잔 훈련학교를 이끌며 소련 전선 후방의 전략 거점인 카르파티아 산맥을 염두에 둔 게릴라 간부 양성에 주력했다. 8월 30일 슬로바키아 민족봉기가 예정보다 일찍 발발하자, 9월 슬란스키와 슈베르마는 봉기 지역으로 은밀히 공수되어 저항군 지휘부에 합류했다. 반란군 측에는 6만 명 이상의 병력과 1만 8천 명의 파르티잔이 모였으나, 독일 국방군의 집중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10월 말 진압되었다. 산악으로 퇴각하는 전투 속에서 슈베르마는 10월 10일 사망했고, 슬란스키는 자신의 파르티잔 분대를 이끌고 1945년 2월 19일 붉은 군대가 도달할 때까지 산중에서 버텨냈다. 이 생환은 전후 그에게 반파시스트 저항의 실천적 정통성을 부여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