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막시모비치 루하제

Николай Максимович Рухадзе
소련 그루지야 1905–1955 ✕ 처형

밍그렐리아 사건을 몰아붙이다 스스로 무너진 자

1930년대 말 가그라 NKVD 지구부장으로서 심문 중 구타를 일상화하며 공공연히 말했다: "때리지 않는 자야말로 인민의 적이다!"

그루지야 보안기관에서 성장한 루하제는 1937년 압하지야 가그라 NKVD 지구부장으로서 '간이 수사' 방식의 대규모 체포를 지휘했다. 전쟁기에는 자캅카스 전선 특별부장과 스메르시 방첩 책임자를 거쳐, 1948년 그루지야 국가보안장관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베리야 파벌을 겨냥한 조작 사건인 '밍그렐리아 사건'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 수개월 전인 1952년 11월 스스로 체포되었고, 1955년 역설적으로 베리야 집단 일원으로 재판받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밍그렐리아 사건의 주도자

루하제의 경력에서 가장 큰 흔적을 남긴 것은 1951–1952년 '밍그렐리아 사건'이다. 1951년 가을, 스탈린이 츠할투보에서 휴양 중일 때 루하제는 독대를 요청했다. 당시 그는 전임자 아브크센티 라파바의 측근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밍그렐리아계 거물들의 반격을 받고 있었고, 이를 스탈린에게 호소한 것이다. 스탈린은 이를 라브렌티 베리야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계기로 삼았다. 1951년 11월 9일,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루지야의 뇌물 수수와 바라미야 반당파 집단에 관하여'라는 결정을 채택했고, 이튿날부터 루하제는 미하일 바라미야(그루지야 공산당 제2서기), 아브크센티 라파바(내무장관), 블라디미르 쇼니야(검찰총장) 등 고위 인사 37명을 체포했다. 사건은 급속히 확대되어 500명 이상이 구금되었고, 그루지야 공산당 중앙위원 11명 중 7명이 체포되었다.

루하제와 부하들은 고문을 동원해 피의자들로부터 '튀르키예와 연계한 반소비에트 음모'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 사건으로 제1서기 칸디트 차르크비아니도 경질되고 아카키 므겔라제가 후임에 올랐다. 그러나 루하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라미야로부터 므겔라제까지 연루되는 진술을 받아내 이를 중앙으로 보냈다. 1952년 6월 4일, 스탈린은 공화국 당 지도부를 우회했다는 이유로 루하제를 공개 비판했고, 6월 9일 그를 해임한 뒤 곧 체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55년 트빌리시에서 열린 재판에서 루하제는 자신이 고문했던 라파바 등과 함께 '베리야 일당'으로 묶여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