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자하로비치 사부로프

Максим Захарович Сабуров
소련 러시아 1900–1977 ↓ 실각 1957

스탈린 말기와 말렌코프기의 계획 관료

1956년 제20차 당 대회 준비 과정에서 카가노비치·몰로토프·보로실로프가 숙청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위대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사부로프는 미코얀과 함께 반대하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

소련의 핵심 경제계획 관료로, 고스플란 의장을 세 차례 역임하며 전후 공업 재건과 제5차 5개년 계획을 주도했다. 스탈린 말기부터 흐루쇼프 집권 초까지 국가계획의 중심에 서서 중공업 우선 노선과 소비재 균형 논쟁 속에서 실무를 책임졌다. 1957년 흐루쇼프 해임을 시도한 반당 그룹에 가담했다가 상임위에서 제명되고, 이후 지방 공장장으로 밀려났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7년 반당 그룹 사건

1957년 6월, 사부로프는 흐루쇼프의 권력 집중과 탈스탈린화 노선에 반대하는 '반당 그룹'에 가담했다. 말렌코프, 카가노비치, 몰로토프가 주도하고 셰필로프가 합류한 이 그룹을 보로실로프, 불가닌, 페르부힌과 함께 지지한 사부로프는, 상임위원회 11명 중 7명의 다수파에 속해 흐루쇼프 제1서기 해임을 시도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주코프 원수의 도움으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했고, 거기서 다수 지지를 확보해 역전에 성공했다. 1957년 6월 중앙위 결정으로 사부로프는 상임위원회에서 제명되고 제1부수상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대외경제관계 국가위원회 부위원장(1957~1958), 시즈란 중기계공장장(1958~1962), 같은 도시의 플라스틱 가공 공장장(1962~1966)을 거쳐 1966년 연금 생활에 들어갔다. 1977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여 쿤체보 묘지에 묻혔다. 반당 그룹 가담자 중 비교적 온건한 처분을 받은 사부로프는, 스탈린 말기부터 말렌코프기를 거쳐 흐루쇼프 집권 초기까지 소련 계획경제 관료제의 정점에 섰다가 정치 투쟁 한복판에서 밀려난 인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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