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총회 의장을 지낸 흐루쇼프기 보건장관
1962년 5월 24일, 제네바 프레니 구릉. 쿠라쇼프는 WHO 신청사 기공식에서 흙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세워질 건물은 모든 인류가 언젠가 질병에서 해방되리라는 희망의 상징이자 초점이 될 것입니다」
철도 전철수의 아들로 태어나 카잔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 31세에 카잔 의학원 원장을 맡았고, 러시아공화국 보건차관을 거쳐 1959년 소련 보건장관에 올랐다. 흐루쇼프 집권기 소비에트 보건의료 체계를 확장하고 의학교육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기 과학잡지 《즈도로비예》(건강)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1962년 제네바에서 제15차 세계보건총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WHO 본부 신축 기공식에서 주춧돌을 놓았다. 그의 재임기 소련은 WHO 두창 박멸 계획을 적극 후원했으며, 1959–1960년 모스크바 두창 유입 사태 당시 KGB와 협력한 신속한 봉쇄·접종 작전으로 질병 확산을 차단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1카잔 의대 졸업, 정신과 전공
- 1935–1941카잔 정신병원 주임의사, 타타르공화국 지역정신과장
- 1941–1942카잔 의학원 원장
- 1942–1953러시아공화국 보건차관
- 1953–1955소련 보건차관
- 1955–1959러시아공화국 보건장관
- 1959–1965소련 보건장관
- 1962제15차 세계보건총회 의장
의료 조직과 교육 개혁
1959년 1월 소련 보건장관에 오른 쿠라쇼프는 보건의료 조직을 사회위생의 관점에서 다루는 연구와 정책을 병행했다. 1960년 전연방 보건의료 활동가 회의에서 소련 주민의 건강 상태를 분석해 발표했고, 1963년 《대의학백과사전》 제30권에 실린 소련 보건의료 개관에서는 인구 변화와 질병·사망, 의료 인력, 외래·입원 시설, 농촌 의료, 위생·역학 사업과 예산을 통계 자료로 검토했다. 그는 결핵 관리에서 일률적인 대중 검진보다 위험 집단에 대한 심층 검진의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병원 정책에서는 소규모 병원을 늘리는 대신 전문 진료과와 인력을 갖춘 권역 간 병원을 세우고, 각 주도에 모든 전문 진료과를 둔 병원을 두자고 제안했다. 의학교육에서는 5년으로 충분하다는 견해에 맞서 의대 교육을 6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회위생을 의료대학의 교육과목으로 정착시키는 데 참여했다. 1955년부터 제1 모스크바 의학원의 보건의료 조직학과를 이끌며 10년 동안 후보학위 논문 13편의 연구를 지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