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로마노비치 사브첸코

Сергей Романович Савч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4–1966 ○ 실각 1955

우크라이나 그리스가톨릭 교회를 강제 해체한 국가보안장관, 스탈린 말기 대외첩보 책임자

흐루쇼프와 사브첸코는 1947년 스탈린과 아바쿠모프에게 롬자 주교가 '바티칸의 비밀 사절' 및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하조직과 협력한다고 비난하며 그의 암살 허가를 요청했고, 이후 롬자는 독극물 주사로 살해되었다.

소련 국가보안기관에서 17년간 국경부대를 거쳐 우크라이나 국가보안인민위원(1943–1946)과 국가보안장관(1946–1949)을 지냈다. 1946년 리보프에서 우크라이나 그리스가톨릭 교회를 강제로 러시아 정교회에 통합시키는 '통합 공의회'를 직접 지휘했고, 1947년에는 니키타 흐루쇼프와 함께 스탈린에게 무카체보 교구의 테오도르 롬자 주교 암살 허가를 요청해 관철시켰다. 1949년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대외정보를 총괄하는 MGB 제1총국장 겸 국가보안차관에 올랐으나, 1953년 베리야 숙청과 함께 해임되고 1955년 '직무 부적합'을 이유로 강제 전역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점령지의 정보망 재건과 무장조직 침투

1943년 9월부터 사브첸코가 이끈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보안인민위원부는 독일군 점령지에서 정보활동을 복구하려고 여섯 작전집단을 파르티잔 부대와 함께 서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남동부로 보냈다. 작전집단은 기존 비밀요원과 연락을 되살리고 새 정보망을 만들며, 독일 정보기관과 협력부대, 우크라이나 및 폴란드 민족주의 조직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들은 파괴공작도 수행하고 나치 점령기구 인사 암살도 계획했다. 목표는 점령지에서 소련 국가보안기관의 조직적 존재를 정권의 공식 복귀에 앞서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1943년 말까지 비밀경찰 대위 빅토르 흐랍코가 이끈 「자 로디누」 집단은 다른 집단과 요원들이 점령지로 이동할 기반을 마련했다. 사브첸코는 12월 키이우에서 흐랍코와 파르티잔 지휘관 시도르 사부로프를 만나 보고를 받고 새 임무를 부여했다. 1944년 2월까지 「자 로디누」는 적어도 152명의 요원과 활동했고, 그중 90명은 집단이 새로 모집했으며, 전쟁 전 요원 60명 이상과 연락을 회복했다. 일부 신규 요원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지하활동가였고, 12명은 충성 확인 뒤 우크라이나 반란군에 파견됐다. 이 집단은 사부로프의 파르티잔 여단 내부에도 100명이 넘는 요원을 두었다.

정보망 재건은 균일하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리우네주에서 활동한 「라즈그롬」은 지역의 정보원 부족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1944년 2월 해산될 때까지 요원 16명만 확보했다. 연구자 올렉산드르 멜니크는 현지 주민과의 접촉 및 요원 모집이 어려웠다고 지적하며, 작전집단의 성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평가한다. 한편 국가보안인민위원부의 파르티잔 부대 내 대규모 요원 모집은 적의 침투를 막는 방첩뿐 아니라 파르티잔 자체에 대한 통제를 세우려는 활동이기도 했다. 사브첸코의 전시 업무는 점령지 정보망을 복구하고, 동시에 무장 저항세력과 파르티잔 조직을 감시·침투하는 국가보안기관의 확대를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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